양변기 위에서/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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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변기 위에서
김선우
어릴 적 어머니 따라 파밭에 갔다가 모락모락 똥 한무더기 밭둑에 누곤 하였는데 어머니 부드러운 애기호박잎으로 밑끔을 닦아주곤 하셨는데 똥무더기 옆에 엉겅퀴꽃 곱다랗게 흔들릴 때면 나는 좀 부끄러웠을라나 따끈하고 몰랑한 그것 한나절 햇살 아래 시남히 식어갈 때쯤 어머니 머릿수건에서도 노릿노릿한 냄새가 풍겼을라나 야아- 망 좀 보그라 호박넌출 아래 슬며시 보이던 어머니 엉덩이는 차암 기분을 은근하게도 하였는데 돌아오는 길 알맞게 마른 내 똥 한무더기 밭고랑에 던지며 늬들 것은 다아 거름이어야 하실 땐 어땠을라나 나는 좀 으쓱하기도 했을라나
양변기 위에 걸터앉아 모락모락 김나던 그 똥 한무더기 생각하는 저녁, 오늘 내가 먹은 건 도대체 거름이 되질 않고
- 시집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에서, 2000 -
* 똥을 누면서도 시를 쓰고, 기억하는 건,
그만한 마음의 공간이 없다면 불가능하리라.
시인의 시들을 읽으면 시를 위해 언제든 마음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단 걸 느끼게 된다.
차암 기분을 은근하게 하는 시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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