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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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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가 핥는다/조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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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80회 작성일 21-05-11 19:57

본문

칸나가 핥는다 





조연호 






내가 보통의 양말을 신고

달밤의 절름발이가 되는 날에

시시하게도 두 다리의 흔적이 달의 분화구에 약간 남아 있었다

다리 한쪽을 질질 끌며 이 붉고 외로운 그림에서

나는 불난 집을 좋아한다


깃털은 깃털에게로 

달라붙은 아이는 떼어낸 아이에게로

온 힘을 다해 꿈을 응원한다


기분나쁜 거 있으면 내 이름을 쓴 인형을 바늘로 찔러

하지만 그걸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이미 그런 증오를 하지 않는다

새 옷으로는 자기의 팔다리도 사랑할 수 없는 그런 괴물이 되는 것을 말이다

일식에 구겨넣은 월식을 말이다


칸나가 핥는다


그림엽서에 그려준 여러해살이 꽃을 안고

반생(半生)의 여행을 떠났다 그림은 피지 않고 있으니까

밤마다 한 개씩의 찰과상과 골절상을 나누는 새에게

내 한쪽 다리를 집어넣어본다 그림은 지지 않고 있으니까

타인의 그림자를 밟지 않고는 한 발짝도 걷기 힘든 그런 밤에

이 여행은 다리가 하나 없이 뒹구는 다른 여행을 부러워했다


가까운 곳에 애벌레 사육통을 놓아두고

거짓말들이 서로를 부둥켜안는

기이한 체벌을 생각한다

그걸 풀기 위해 벌레의 비행은 쉬운 매듭부터 찌그러지고


칸나가 핥는다


너의 천체처럼 

나의 들판을 끊어다오

가끔씩 나는 사건이 사라지는 지평선을 장애로 안고

이 노래는 자신을 꾸밀 때마다 인간에게서 입술을 데려온다


멀리 울리는 원뢰(遠雷)에 기댄 사람

그와 그녀의 제정신들

오늘은 너의 얼굴에 밤을 발라주마

대낮은 동시에 팔과 다리가 잘리는 형벌 안에 있으니

오늘은 너의 얼굴에 일식을 발라주마



- 시집 <천문>에서, 2010 -












 * 칸나는 노랑과 주황의 진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러해살이 꽃이다.

   상당히 어려운 시다.

   그런데 읽는 맛이 살아 있다.

   이는 시가 피지도 지지도 않는 그림엽서에 그려진 꽃이 아닌,

   핥고 있는 꽃을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상징들과 얽혀 꽃은 명징한 의의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명징한 의의를 찾아내는 건 우리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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