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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 어두운/신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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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10회 작성일 21-05-22 20:09

본문

 차갑고 어두운 





 신용목





 겨울은 호수를 창문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호수에 돌을 던진다


 네가 창문을 열었을 때 그 앞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오후의 까페에는 냅킨 위에 긁적여놓은 글자가 있고

 연필은 언제나 쓰러져 있다 차갑고 어두운 것을 흘려보내고 난 뒤에, 남은 생각처럼


 태양은 연필 뒤에 꽂힌 지우개 같지만 문지르면 곧잘 호수를 찢어버리지


 바보처럼 깊이에 대해서 묻지는 말자,


 왜 생각 속은 늘 차갑고 어두운 것일까 생각하면서


 까페를 나와 호수공원을 돌고 있다


 여기서 해마다 스무구씩 시체가 건져집니다 정말이라면, 우리가 죽이고 온 스무살이 해마다 돌아오는 거겠죠

 무서워,

 까페 간판에 불이 켜지는 시간이면


 물을 닦은 냅킨처럼 안개가 피어오르는데 안개 속엔 꼭 안개만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몰라서,

 뾰족하게 깍은 연필을 움켜쥐고 무언가를 견디며


 쿵, 바닥을 울리고 호수 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는 돌멩이를


 오랫동안 올려다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생각,


 냅킨 위에 한자씩 씌어지는 글자처럼 안개 속에서 한걸음씩 사람이 나타나서 내 눈을 찌를 것만 같은데......


 차갑고 어두운 곳을 생각하면 차갑고 어두운 곳이 생기겠지,


 이렇게 호수공원을 돌다보면 안개는 공중에 띄워놓은 물속이거나 깨지는 순간의 창문 같아서

 창문을 깨지 않고도 창문 밖으로 쏟아지는 불빛 같아서,


 나는 연필처럼 깍인 채 까페에 앉아 차를 마시고 또 호수공원을 돌겠지만


 생각 위에 글자를 쓸 때마다 금방 낙서가 된다



 - 시집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에서, 2017 -









 * 우리는 간혹 바보처럼 깊이에 대해 고민한다.

   깊이란 그가 혹은 그것이 가진 바닥까지의 거리이므로,

   그 바닥까지 내려가 보지 않고선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서로의 깊이에 대해 아는 체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다만 차갑고 어두운 것이 지나간 뒤에,

   우리에게 남겨진 생각을 잘 다루고 간직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쓰는 생각은 다 낙서가 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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