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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을 꺼내어 주머니에 넣고/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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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19회 작성일 21-06-30 19:55

본문

내 눈을 꺼내어 주머니에 넣고 





정영







걷는다

눈뜬 자들의 막막함으로 새들은 날아오르고

안개가 걸음 묶으며 언 땅속 같은 관계를 부추기는

새벽


나의 애인은 장님

나는 우리의 관계를 

모두가 잠들어 있느라 아무도 봐주지 못한 개화(開花)라 발음한다

눈뜨라, 주머니 속 두 눈아


나의 애인은 꿈꾸는 장님

문 열면 사막까지 펼쳐지는 아뜩한 공원

거기, 줄 끊긴 연 너풀대는 한그루 나무

그 아래 오래도록 내가 있다

감은 눈으로도 우는 노을과 뚝뚝 떨어지는 과실 같은 별과

가슴을 찾느라 허공을 더듬는 다섯 손가락과

입맞추기 위해 늪으로 빠져드는 긴 혀와


여덟 굽이의 고개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한 안개와

빛을 더는 어쩌지 못하고 어둑해진 들판과 전봇대에 걸쳐진 새들의 비행

그 앞에 나의 애인이 서 있다

바라보고 있었다

두번째 애인도 세번째 애인도 장님이 되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관계가

모두가 웃고 떠드느라 아무도 봐주지 못한 낙화(落花)라 발음한다


나의 애인은 풍경 바라보길 좋아하는 사람

거기, 우리 누웠다 온 자리 들여다보는 일 막막하고

아직 가시지 않은 우리 체온을 지우러 온 아침별 바라보는 일 더 막막하니

영원히 눈감으라, 주머니 속 두 눈아


 -  시집  <평일의 고해>에서,  2006  -









 * 시인은 개화할 땐 눈뜨고, 낙화할 땐 눈감으라 한다.

   다만, 두 눈은 주머니 속에 넣고.

   어쩌면 장님이 더 예민하게 듣고, 더 상세하게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묵직한 시를 읽으며 눈을 감고 풍경을 바라본다.

   나의 애인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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