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책을 고르며/박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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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책을 고르며
박경석
새우등 움츠리고
아이들이 화해를 기다리고 있다.
큰맘 먹고 말문을 트자
부부싸움은 사흘 만에 끝난다.
얼고 풀리고 순환 속에 사는 일
강 건너 베개가 되돌아왔다.
사흘 만에 계엄령 풀고
큰아이 앞세우고 청계천에 닿았다.
전집 몇 질 머리 처박고
그을린 천정에 닿아 있다.
치장 버린 채
5할 헐하게 팔리는 저들
한물 놓친 누룽지에 흐르는 시간
과거로 치달으며 파묻히는 저들
여기서는 새 紙貨(지화)도 헌얼굴로 보인다.
알맞게 참고 지난날 돌아보고
절반쯤 밑지며 느긋하게 사는 일
내 스스로 삶을 깨치며
아들 친구하여 책을 고른다.
- 시집 <차씨 별장길에 두고 온 가을>에서, 1992 -
-헌책 사러 보수동 헌책방 골목 쏘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절반쯤 밑지며 느긋하게 사는 일,
헌책이며 헌 지폐며, 새 것은 날마다 낡아가는 것이 이치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아들이 아버지가 되듯이.
아들 친구 삼아 헌책을 고르는 풍경이 부러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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