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얼굴/김중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본문
우리의 얼굴
김중일
우리의 얼굴을 이야기하려면
등을 이야기 안 할 수 없겠습니다.
뒤돌아서서 멀어져가는 상대의 등을
응시할 때,
우리의 얼굴은 비로소 완전히
정직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얼굴이 이 계절 한장의 잎이라면
그 뿌리는 두 다리도 배꼽도 가슴도 아니라
등에 묻혀 있습니다.
등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언제나 나는
돌아가는 내 등을 바라보는 너의 솔직한 얼굴이
궁금했습니다. 너의 첫 눈빛은
내 등 위로 홀씨처럼 날아와
내 등 속에 뿌리내리고
내 목을 곧게 뻗어올려
내 얼굴을 피우고 표정을 뿜어냈습니다.
내 얼굴 위에 벌과 나비와
마땅한 이름 없는 날벌레처럼
눈 코 입 귀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사람의 시간으로는 평생을
앉았다가 날아갑니다.
눈 코 입 귀가 날아가는 곳은
길섶 철쭉 같은 불길 속입니다.
내 얕은 얼굴로는 다 못 받은 너의 슬픔이
번번이 넘칠 때마다
우리는 등을 맞대고 울었습니다.
울컥 흘러넘친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
대신 등을 얼굴처럼 맞대고 비비며 울었습니다.
사월이 지나면
너의 눈빛이 피운 내 얼굴도 어둡게 저물 것입니다.
- 시집 <가슴에서 사슴까지>에서, 2018 -
- 얼굴로 못하는 말을 등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얼굴로는 도저히 알아차리지 못하던 사연을,
등을 보면서 알게 되어 울어버리는 때가 있다.
그만큼 등은 진실 가까이 서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