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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뵈뵈 / 이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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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47회 작성일 22-05-08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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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 뵈뵈는 양날톱으로 무언가를 움켜쥐려 하고 있었다. 움켜쥐려 하고 있었다. 그만해, 뵈뵈, 그만해. 그러나 뵈뵈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움켜쥐려 하고 있었다. 움켜쥐려 하고 있었다. 하늘은 힘껏 맑았다. 더이상 맑을 수 없을 만치 맑았다. 뵈뵈, 그만해. 그만해. 뵈뵈. 나는 지쳤어. 지쳤어 나는. 그제야 뵈뵈는 나를 쳐다보았다. 더이상 지칠 수 없을 만치 더더더 지쳐봐. 그러면 지치지 않는 날도 오겠지. 뵈뵈는 다시 허공으로 양날톱을 휘저었다. 휘저었다. 나는 가방에서 큐피를 꺼냈다. 그러지 말고 뵈뵈, 이것 좀 봐. 이것 좀 봐, 뵈뵈.


뵈뵈는 양날톱이 큐피의 얼굴 쪽으로 길게 다가왔다. 복덕방 김씨가 버리고 간 거야. 그게 오늘 이십구번지로 이사했지. 어제까진 이십팔번지에 살았었고. 뵈뵈는 흡족하진 않지만 뭔가 움켜잡을 것이 생겨 기쁜 것 같았다. 괜찮니? 뵈뵈. 좋아? 뵈뵈. 뵈뵈는 큐피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했지만 만질 때마다 길고 가는 흠집이 났다. 그러니까 뵈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뵈뵈, 그러지 마. 아니야, 그러지마, 뵈뵈. 뵈뵈는 큐피를 움켜쥐려 하고 있었다. 움켜쥐려 하고 있었다.


떠나기 직전 복덕방 김씨는 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 길게 길게 담배를 피웠어. 오래오래 큐피를 쓰다듬으면서. 그러다 뭔가 끔찍한 기억이라도 떠올린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큐피를 버렸지. 나는 대문 뒤에 숨어 있었어. 큐피를 주워가야겠다 생각하면서. 드디어 이삿짐 트럭이 출발했어. 그렇게 얼마간 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차가 멈췄지. 복덕방 김씨가 차에서 내리는 게 보였어. 김씨는 곧장 자신이 버린 큐피에게로 걸어갔어. 그러곤 땅바닥에 누워 있는 큐피를 내려다봤어. 나도 멀리서 큐피를 바라봤지. 한참을 바라보던 복덕방 김씨는 뭔가 큰 잘못이라도 한 얼굴로 얼른 큐피를 주워서 품에 안았지. 그는 큐피를 안고 차에 올랐어. 나는 여전히 대문 뒤에 숨어 있었지. 숨어 있었지. 이삿짐 트럭이 다시 천천히 움직이려고 했고 나는 숨어 있었지. 숨어 있었지. 트럭이 떠나가고 있었어. 그렇게 내 큐피가 떠나가고 있었어. 사라져가는 트럭의 뒤통수는 더이상 직사각형일 수 없을 만치 직사각형이었어. 이제 그만 일어서려는데 저 멀리 트럭의 차창이 스르르 내려오는 게 보였어. 복덕방 김씨의 팔이었지. 그의 손엔 큐피가 들려 있었고.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창밖으로 큐피를 버렸지. 다시 큐피를 버렸지. 멀리 던지진 않았어. 그저 축 늘어진 팔 아래로 슬쩍 늘어뜨렸지. 큐피가 차 바퀴에 밣히지 않도록. 언젠가 다시 주워갈 수 있도록. 이삿짐 트럭이 모퉁이를 돌아간 뒤에도 난 숨어 있었지. 숨어 있었지.


뵈뵈, 내 말 들리니. 내 말 듣고 있니, 뵈뵈. 난 이삿짐 트럭이 보이지 않게 되고서도 한참을 숨어 있었지. 한나절 혹은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해낼 수 있을 만큼의 시간 동안. 그러니까 뵈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뵈뵈. 뵈뵈? 뵈뵈? 뵈뵈는 검은색에서 회색으로 회색에서 검은색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사라져가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시간이 사라져가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보고 있었다.


맑은 날이었지만 어두운 방 밖으로 끊임없이 비가 내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다. 박수 받고 싶니, 뵈뵈. 상처에 대해 얘기해줄까, 뵈뵈. 그때 우리가 베었던 풀들은 끝이 없었고 베어내는 순간 다시 자라나는 그런 느낌이었지. 인정사정없이 번식하는 밤의 공원들 같았지. 뵈뵈? 뵈뵈? 그날 너와 내가 처음가본 소도시 상점에서 사먹었던 그 도너츠 말이야. 하얀 설탕시럽 범벅이던 그 싸구려 도너츠 말이야. 뵈뵈? 뵈뵈? 마음이 바빠진 나는 이 얘기 저 얘기 저 얘기 이 얘기 생각나는 대로 마구마구 지껄였다. 그러나 뵈뵈는 내 얘기마다 그저 응, 이라고만 했다. 그저 응. 목소리로만 목소리로만. 뵈뵈, 그러지 마. 아니야. 그라지 마. 뵈뵈. 뵈뵈는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지고 있었다. 뵈뵈, 결국 그런 거구나. 그런 거구나, 뵈뵈. 정말 비가 내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다. 그러니까 뵈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뵈뵈


창비2010 이제니[아마도 아프리카]

감상평 : 시집[아마도 아프리카]를 세번은 정독한 것 같다

읽을 때마다 이럴수가 저럴수가 감탄사를 동반한다

몰이해시라는 장르면서 꼭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가장 긴 시라서 올리게 되었고 감상하면서 기쁨을 찾길 바란다

[뵈뵈]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 상대이거나 또는 [보인다]라는 의미이거나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이름을 기억해낼 수 있을 만큼의 시간 동안]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누구이거나 생각나는 사람이거나 등등

잘 읽었다, 앞으로 또 시집을 발간하면 좋겠다는 희망을 간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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