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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사과 / 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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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81회 작성일 22-05-23 22:48

본문

잘 익은 사과 /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깍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鵲巢感想文

    여기서 잘 익은 사과는 상징이다. 그러니까 사과의 원래 관념은 없다. 다만, 시 끄트머리에 사과 본연의 의미를 잠깐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구멍가게 노망 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있는 모습은 시의 객체다. 마치 독자를 은유하며 시적 감화와 곧 미래에 죽음에 이르는 동반자와도 같은 사과의 일부를 예언한다.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큇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는 시의 청각적 요소를 살린 시적 교감이겠다.

    시인으로서 교감의 대상자를 만나는 일은 큰 행운이며 순간 영원한 삶을 또 잠시 느껴보는 일이겠다.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시의 시각적이며 촉각적 교감을 드러낸 한 부분이다.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은 시의 모호한 특성을 묘사한 부분이라면 내 손등을 덮어주는 일은 시의 감성적인 특성을 묘사한다.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 없이 깎이고 있네요. 자전거 바퀴처럼 바큇살 하나씩 뜯는 일 그것도 순차적으로 해체하며 마치 이 일은 골목의 모퉁이를 둥글게 만드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면 시 감상은 소리 없이 깎이는 것과 같다.

    해체는 탄생의 지름길이며 노망 든 할머니가 곧 죽음을 향해 치닫는 작업이겠다.

    치통도 없는 어금니, 그 어금니 깨물 일 하나 없이 잇몸으로 오물오물 씹는 것보다는 그나마 수수꽃다리도 이런 것은 없을 것이다. 바득바득 오독오독 씹어놓았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한 3년을 허비했다. 3년 더 늙었지만, 3년 더 젊어진 것 같다. 그만큼 어리다는 얘기다. 시인께서는 넓은 아량으로 보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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