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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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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혀 / 김현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grail2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43회 작성일 22-06-17 11:29

본문

자면서 눈을 맞았다

깨어보니

눈은 사라지고

손발이 천천히 젖어 있었다


부엉이는 내 눈을 가지고

어디로 날아가서

무엇을 보여주려고 한 것일까


책장을 혀로 넘길 때마다 물이 떨어졌다


여인은 달밤에

우물을 들여다보았다


지혜의 우물 속에

흰 부엉이가 알을 낳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갔다

달은 하얗고


여인은 그 알을 길어올려

깨뜨려 먹었다

어리석은 자가 그 알을 키워 먹기 전에


여인은 달이 뜨면

홀로 총총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아 보았다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은 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전에

이룩할 수 없는 것을 약속하고

사랑에 빠진 후에

추락해서

칼로 그를 찌르는 것을

당나귀가 놀라 소리치고

어리석은 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올리고

어리석은 자를 깨끗이 먹어치운 후에

자신을 바라보는 어리석은 짐승을

여인은 아침이 오면

홀로 눈을 뜨고

침대에 누워 보았다

어리석은 자의 입속에 가득한

순백의 깃털을


책장을 손가락으로 넘길 때마다 촛불이 켜졌다


자는 동안

첫눈,

두그루의 나무가 있는 결혼식에 다녀왔다


신은

너희의 아래에 있고

너희의 앞과 뒤에

너희의 곁에

너희의 안과 밖에

너희의 위에 있다


촛불을 하나씩 끌 때마다

나이는 한살씩 많아지고

부모가 되거나 조부모가 되어서

공기도 좋고 물도 좋고 인심도 좋은 곳에

무덤 자리를 봐두었다

흰 부엉이가 알을 낳는 곳이라고 했다

무덤 속에서 지혜로운 자가

무덤 밖에서 어리석은 자이니라

은식기에 당나귀의 젖과 백설기를 담아두고

하룻밤을 자고 나면

그 모든 게 사라지고 없었다


죽은 나무와 죽지 않는 나무 사이에서

유가족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시를 한편 읽겠습니다


신은

너희의 아래에 있다

짓밟아라

검은 땅에 심은 보리 씨앗을 밟듯이


신은

너의의 앞에 있다

지팡이를 버려라

장님은 외나무다리 위에서도 추락하지 않고


신은

너희의 뒤에 있다

어둠 속에 그림자를 숨겨라

한낮에 숨바꼭질하다 감쪽같이 사라지는 아이들처럼


신은

너희의 곁에 있다

가장 더러운 곳을 닦는 막대걸레인 양

화장실에서 끼니를 챙겨 먹을 때에도


신은

너희의 안과 밖에 있다

집 잃은 개의 집을 부숴라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줄 곳이 개의 네발뿐인 듯


신은

너희의 위에 있다

불탄 나뭇가지 위에

불탄 형상으로

눈동자를 빛내며

알을 품고

당겨라 방아쇠를

빗나가는 믿음으로 기도를 올려라


흰 부엉이가 물속으로 수백번 가라앉았습니다

거기, 가만히 살아 있습니다

해골이 알에서 나오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혀를 내밀었다

우물 속에서

돌잔치에서 보았다


드디어 생일을 맞은 지혜 앞에서

죽음을 때때로 잊고 재롱을 부리는

한국 남자들의 미래를

손녀가 건강하게 자라서

슬픔도 없이 외로움도 없이 자괴감도 없이

광장에서 하야가를 부르다가도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갖고

아이를 키우고

손녀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현모양처가 되기를

그러나 손녀들의 미래란

암벽등반을 하는 여자가 되어

약초를 캐며 사는 여자와 사랑에 빠져

축복의 진보주의자가 되기도 하는 법

그러나 어리석은가 남자들의 미래란

늙으면 죽어야지

술만 먹으면 남자와 손잡고

그날 밤 황홀한 시간을 잊을 수가 없어

노래주점에 가서

부둥켜안고

둥지를 틀고

새 된다

지저귈 땐 귀엽게


부모가 살아 계실 적에 부모를 감사히 생각하고

아이의 아빠는 눈을 아이의 엄마는 입술을

그 아이가 지닌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였다


아이는

판사봉과 연필과 실타래와 청진기와 지폐를 앞에 두고

부모와 조부모와 부모의 친구들과 조부모의 친구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것을 집어 들어

자신이 가진 가장 깊은 둥지 속으로 넣었다

여자의 미래였다

지혜롭구나 우리들의 아이란

신은

너희의 가장 나중의 것에 있다


하야하십시오.


울거나

웃거나


눈을 맞으며

지혜의 우물 앞에

촛불을 켜고

해골을 들고 서 있었다

해골의 혀를 쓰다듬으며

손을 녹였다


물이 떨어졌다

책장을 넘기는 부엉이 소리

썩은 물이 하나둘 퇴진하는 소리

사나흘 꿈 밖으로 나가지 않은 사람이 걸어나오며 말했다


꿈이 아니에요

부앙아,

이제 그만 내 눈을 물고 돌아오렴


창비2020 김현[호시절]

감상평 : 화자는 많은 꿈 중에서 동성애자를 선택한 듯하다

청소년기에 성정체성을 바로잡지 못하면 동성애자가 된다는데

많은 얘기를 시에 담고 싶은 화자의 주제는 동성애자의 비애다

재미있게 읽었고 화자와 같은 분들이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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