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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쏟아 낸 얼굴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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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82회 작성일 24-08-24 21:03

본문

비를 쏟아 낸 얼굴

=박은지

 

 

    계속된 마른장마 회의실 밖은 사이렌 소리가 여전하다 다시 태어나면 무엇으로 태어나야 합니까 아무도 죽지 않은 바위, 아무도 오르지 않은 크레인, 끝내 출발하지 않는 열차, 아무도, 어느 바위에서든 죽기 마련입니다 크레인에 오르지 않는 것이 가능합니까, 출발하지 않는 열차는 열차라 할 수 없지요, 역사가 증명하지 않습니까 서로의 후생을 부정하는 일은 즐거웠다 내일 계속 되겠습니다 문을 열어도 여전히 비는 내리지 않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 비를 쏟아 낸 얼굴로 흩어진다 우산은 소품처럼 가방에 누워 있고 오늘 할 일을 모두 끝마쳤는데 창밖에 비는 내리지 않는다 습기가 점령한 회의실에서 책상과 의자가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빈틈으로 스며드는 습기를 견디고 있다

 

 

   민음의 시 288 박은지 시집 여름 상설 공연 96-97p

 

 

   얼띤感想文

    험난한 계곡을 보면 이마를 짚고 하늘만 본다 새가 날아가고 비행기가 날아가는 텅 빈 주차장을 생각하듯이 저녁은 다만 노을만 낀 불꽃이었을까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빈 잔을 들고 싱크대에 나르고 물에 한참이나 담가두기도 하고 불었을까? 아니면 씻겼을까? 혼자 삭지 못할 말 하나, 야야 오늘은 들리지 말고 과일이나 좀 사다주고 너는 그냥 가거라, 어머니의 말씀 바깥은 아직도 무더위 여름이라는 사실, 무성히 자란 벚나무의 이파리와 하루가 다르게 열리는 무화과 열매 나는 점점 마르고 있었다 국수를 너무 먹었어 그럴 거야 퀭한 눈빛과 짧은 머리 그리고 미용실의 손 빠른 가위질이 있었다 차를 몰며 들어간 동네 대형할인점 복숭아 한 세트 자두 한 세트 그리고 며칠 전 다 비웠던 참지름 한 병까지 넣었다 적립 포인트 있으신가요? 멀뚱거리며 서 있다가 전화번호 뒷번호 불러주세요 가볍지 않은 입과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은 입 사이 오가는 호주머니만 더 헐거워진 것 같다 =崇烏=

 

    안과 밖을 잘 묘사한 시다. 회의실은 어떤 결말을 내리지 못한 묵묵부답이고 바깥은 여러 사건으로 요란하다. 시적 주체는 이런 와중에도 오늘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마쳤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나을까? 반문은 있지만, 바위처럼 혹은 크레인처럼 아니면 열차처럼 역사를 이루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로의 후생을 북돋는 그런 일 내일도 모레도 이루고 싶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므로 현실은 비만 맞게 되고 창밖은 맑으나 흐린 것이 되는 것이고 마른장마는 사이렌 없는 사이렌으로 도마 위만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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