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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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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언기 =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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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54회 작성일 24-11-16 21:26

본문

종언기

=김 안

 

 

    불가능해진다. 창을 닦으며 생각한다. 지난번 진료 때보다 선생은 더 늙고 야위어 있었다. 햇빛을 자주 쬐는 것이 좋다던 그의 등 뒤로 암막 커튼이 살짝 벌어져 있다. 날카로운 빛이 선생의 정수리를 가르고 있다. 여기 검게 보이는 부분 보이시죠. 불가능해 보인다. 말랑한 검은 반죽들 사이로 빛어제 병원에 가던 길에 우연히 만난 동창은 자본주의의 돼지가 되어 있었다. 벌어진 셔츠, 그렇게 하얀 배는 본 적 없었지. 누가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았나. 나는 창을 닦는다. 닦을수록 어두워지는 빛.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창 앞에 있다. 아주 깨끗해 보이죠.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말이죠. 우주보다 아주 조금 모자란 저것을 선생은 가리키며 말한다. 육안일 뿐입니다. 병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어요. 조심하세요. 선생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는 귀신이 나를 내려다본다. 텅 빈 두 눈 사이를 가르는 빛의 파장. 큰곰자리처럼 보이네요.

                                                                                     *

    나는 누워 창밖을 본다. 하얗게 성에 끼는 소리. 지난 겨울 백운호에서 들고 온 돌멩이가 덜그럭거리는 소리. 누군가 오는 건가. 몸을 일으켜 창을 닦으며 생각한다. 불가능하다. 살과 뼈 사이가 벌어지는 소리. 그 틈, 그 우주적 질감. 늙은 새 한 마리가 밤하늘에서 가파르게 떨어진다. 떨림과 빛사람의 소리를 지른다. 창을 열고 호흡한다. 날개를 편다.

 

 

   문학과지성 시인선597 김 안 시집 Mazeppa 44-45p


   얼띤 드립 한 잔

    얼마 전 병원에 다녀온 적 있다. 아마 병원을 찾은 것도 십 년 만에 일이지 싶다. 아니 더 된다. 삼십 대 후반쯤에 대장내시경을 해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소싯적 땅바닥에 떨어진 것도 가리지 않고 먹곤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부터일까! 특히 장이 좋지가 않았다. 결국, 결혼한 후 서른 초쯤에 만성 충수염으로 수술을 받았다. 커피 일을 삼십 년 가까이 한 것도 문제면 문제다. 늘 입에 커피를 달고 살았다. 무엇을 먹든 화장실은 금시였고 하루에도 서너 번은 그 문을 당겨야 했다. 속이 너무 이상해서 병원에 간 것이었는데 이상한 기분까지 들기도 해서 병에 관한 여러 정보를 알아보기도 했다. 에휴, 이참에 대장암이라도 걸렸으면, 대장암 진단만 받으면 12천은 거뜬히 챙길 수가 있어. 그러면 빚도 갚고 나름 여유는 좀 생기겠지 하며 혼자 너스레를 떨면서 병원에 간 것이다. 또 사실, 대장암 초기현상과 췌장암 초기증상까지 아주 완벽히 들어맞았다. 살도 몇 킬로나 빠져 제법 가벼운 것도 나를 위안하기까지 했다. 검사를 받기 전에 병원 지시대로 따랐다. 국민건강검진도 받지 않아, 그 서류처리도 하고 여기에 보태어 CT와 각종 내시경까지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서운하기 짝이 없었다. 의사 선생은 나이에 비해 아주 건강함을 강조했고 여기에 운동만 좀 하시면 완벽하다는 것이다. 하늘에 번쩍, 무언가 서운한 것이 지나간 것이다. 삶에 더 충실하라, 말인 거처럼 들렸다. 이후 거짓말처럼 장도 좋아졌다. 화장실 몇 번씩 드나드는 일도 준 것이었고 굵고 실함이 소아의 변이었다.

    시, 종언기는 없어지거나 사라진 후의 기록, 계속하던 일 끝장 난 것을 말한다. 어쩌면 시인은 죽음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나이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을 만난 본 일은 없으나 어떤 동질감마저 느껴온다. 글이란 참 묘하다. 가끔은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거처럼 읽히기도 해서, 아직도 닦을 창을 생각하면 곰처럼 바위에 앉아 새 모자 새 고무신을 신고 저 굵고 실한 대를 꺾는 일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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