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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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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610회 작성일 25-02-21 11:11

본문

겨울밤- 신경림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뱄다더라. 어떡할거나.

술에라도 취해 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 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 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를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 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 편지라도 띄워 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 볼거나.


- 시감상 :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내 기억 속 꼬부랑길을 밟고 선친이 걸어오신다. 삼 남매가 아랫목에서 물고구마처럼 단내를 풍기며 끈적거릴 때 골목 어귀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팔다리가 쑤시는 녹슨 철대문을 여는 소리, 어스름이 고봉처럼 쌓이고 단칸방 같은 화단에 핀 나팔꽃의 얼굴이 선명하다. 아버지의 계절은 겨울이었으리라. 아버지의 몸에서는 언제나 각질이 성에처럼 휘날렸고 폐기름 냄새가 났다 새하얗게 뼈를 드러낸 아버지의 슬픔들, 정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아버지가 보인다. 

 아버지가 보고 싶은 날이다.

댓글목록

崇烏님의 댓글

profile_image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래간만에 읽어 봅니다. 신경림 시인의 시,
별고 없어시지요 형님, 감상에 마음이 가라앉네요.
건강 챙기시고요
강건하시길요.....

콩트님의 댓글

profile_image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올해가 푸른 뱀의 해라고 했던가요

신발도 신지 않고 담벼락을 기어오르는 뱀의 뜀박질이 너무 빠릅니다.
올해도 이제 겨우 열 달 남짓.....ㅎ

살다 보니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곤 합니다.
건강하다고
건강관리 소홀하지 마시고요,

안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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