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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의 인생공부 / 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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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05회 작성일 25-06-12 10:43

본문

올 여름의 인생공부 / 최승자



모두가 바캉스를 떠난 파리에서

나는 묘비처럼 외로웠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발이 푹푹 빠지는 나의

습한 낮잠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사라졌다.

시간이 똑똑 수돗물 새는 소리로

내 잠 속에 떨어져 내렸다.

그러고서 흘러가지 않았다.

엘튼 존은 자신의 예술성이 한물갔음을 입증했고

돈 맥글린은 아예 뽕짝으로 나섰다.

송×식은 더욱 원숙해졌지만

자칫하면 서××처럼 될지도 몰랐고

그건 이제 썩을 일밖에 남지 않은 무르익은 참외라는 뜻일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아이처럼 웃을 것.



(시감상)


인파가 들물처럼 밀려오는 미로 같은 시장통 좁은 길마다 오가는 눈알이 따개비처럼 붙었다. 나는 몸을 움츠리고 세파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무인도에서 영화 Cast Away의 톰 행크스처럼 윌슨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어느 날, 팔자에도 없는 그렇게도 싫었던 호객 소리가 스스로 운명이라고 여겨질 때 위안은 홀로 아리랑이었고 또 다른 외로움으로 번졌다. 내가 잠그지 못한 수도꼭지에서 새나간 나의 피와 살들, 고여 문드러진 숱한 날들을 들여다보면 나는 썩을 일밖에 남지 않은 무르익은 참외에 불과했다. 온몸에 악취가 진동한다. 이젠 윌슨도 떠나버리고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환부를 긁어내야 할 시간,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나는 지긋지긋한 이 무인도를 벗어나기 위해 오늘도 떼배을 잇는다. 푸르른 하늘 우러러보며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처럼 나는 세상과 조우하며 어깨동무할 수 있을까.



(시인프로필)


1952년 충청남도 연기에서 태어났다. 수도여고와 고려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했으며, 계간 '문학과 지성'에 '이 시대의 사랑' 외 4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최승자는 현대 시인으로는 드문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박노해, 황지우, 이성복 등과 함께 시의 시대 80년대가 배출한 스타 시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2001년 이후 투병을 하면서 시작 활동을 한동안 중단했으며 2006년 이후로 요양하다 2010년, 등단 30주년 되는 해에 11년의 공백을 깨고 신작을 발표하였다. 저서로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연인들' 등이 있고, 역서로 '굶기의 예술', '상징의 비밀', '자스민', '침묵의 세계', '죽음의 엘레지', '워터멜론 슈가에서', '혼자 산다는 것', '쓸쓸해서 머나먼'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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