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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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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런닝구/ 배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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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08회 작성일 25-07-05 10:44

본문

엄마의 런닝구

 

  배한권

 

 

 

작은 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링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 만하게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만하게 뚫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 한다 한다.

엄마는 새 걸로 갈아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한국글쓰기 연구회『어린이 동시집』(보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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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1987년 당시 경산 부림 초등 6학년생의 작품이다. 엄마의 다 낡아빠진 속옷 하나로 가족 모두의 사랑을 확인한다. 엄마가 식구를 사랑하는 방법과 가족들의 짠한 마음속에 핀 엄마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개비를 재촉하는 작은누나의 측은지심과 푹푹 찢어대는 아버지의 신경질적이지만 묵직한 사랑과 절대근검을 통한 헌신적 가족 사랑이 체질화된 어머니와 이 모든 사실들의 진술이 부끄럽거나 민망하게 생각되었다면 절대로 이런 시는 나올 수 없었을 한권이의 꾸밈없는 시선이 어울려 능청스럽고도 아름다운 한 편의 훌륭한 동시가 되었다. 어른들이라면 궁색하게 보이는 것이 싫어서라도 아마 이런 시 쓰기는 쉽지 않을 터이다. 이오덕 선생이 생전에 좋은 동시의 모범이라며 자주 예로 들곤 했던 시이기도 한데, 이렇듯 동시는 꾸밈이 없어야 한다.

 

   오래 전 학생 백일장의 심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효도’라는 지정된 시제로 쓴 한 초등 5학년생의 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난 커서 부자 되면 절대 엄마한테는 한 푼도 주지 않을 거야. 늘 나만 보면 공부해서 남 주나며 엄마는 잔소리를 하신다. 다 너 잘 되라고 그러지 어디 나 좋자고 그러냐 하신다. 난 커서 훌륭한 사람 되고 돈을 많이 벌면 아빠에겐 국물도 없다고 미리 말을 해두었다. 아빠의 소원도 오직 내가 잘 되는 거란다. 국물은 하나도 필요 없단다. 난 엄마 아빠의 그 말씀을 진실이라고 굳게 믿는다” 대충 이런 식이다. 발칙한 아이의 상상력이 진도는 좀 나갔으나 발라당 까지진 않았다. 나중에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식한테 뭘 시켜주겠냐고 침 흘리며 물으니, 그 아빠에게 자장면 시켜주겠다는 오래전 TV 광고 속 아이의 능청처럼 귀엽기까지 하다.

 

   이 시도 막힘없이 발랄하고 분방한 초등학생의 시이지만 때로는 아이의 시선과 생각이 이렇게 어른을 전복시킨다. 모범답안을 강요받았다면 결코 이 시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시에는 이런 상황이 부끄럽다든지 엄마가 불쌍하다든지 아버지가 해도 너무한다든지 따위의 직접적인 감정은 모두 절제되었다. 물론 의도된 건 아니다. 특별한 비유도 상징도 기교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진술이지만 엄마의 런닝구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페이소스 같은 것을 아이도 느꼈던 것이다. 이런 유머러스한 감수성이 잘 자라면 훗날 시인이 될 수도 있겠고, 시인보다는 잘 나가는 드라마 작가나 시나리오 작가가 되든지 영화감독으로 진출할 수도 있으며 어느 분야에서든 그 힘과 감각이 발휘되리라 믿는다. 지금은 배한권 학생의 나이가 40대가 되었을 텐데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 궁금하다.

 

  권순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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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감상)


   마음에 가뭄이 들때마다 푹푹 파이고 갈라진 마음 속 서랍에 넣어둔 이 시를 꺼내 읽는다. 


 뱀처럼 미끄러져가는 가파른 골목, 그 언저리에 허물을 벗듯 큰개자리 하나 반짝거린다. 녹슬어 무릎이 까진 구멍 난 철대문, 잇몸이 낡아 처마가 바스러진 스레트 지붕, 마중물이 반갑다고 인사하는 펌프질 소리, 주머니깍지벌레가 감나무를 파먹는 소리, 술 드신 아버지가 물끄러미 서 있는 대문의 멱살을 잡고 초저녁부터 싸우는 소리, 그럴 때마다 우주 속으로 꺼져가는 할머니의 한숨소리, 어머니의 소매로 스며드는 젖은 침묵이 매미울음소리처럼 내 귓속에 자지러진다. 


내 유년의 잊지 못하는 그날처럼 동시 한 편 소개드린다.


제목 : 앞니


         앞니가 빠졌다

         웃음구멍이 생겼다


나는 이 짧은 두줄의 시를 읽고 전복되었고

아이들은 조물주가 구정물 같은 이 세상, 수정처럼 맑아지라고 보낸 시인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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