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장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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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장승규*
널
끊을 수 있을 거야
가만히 생각해봐
아니야
우린 사랑이 아니었어
젊은 시절 나는 애연가였다.
1970년대, '라때'에는 흡연자를 '애연가'라 불렀다. 그 말 속에는 묘한 관용과 낭만이 섞여 있었다. 사무실에서도, 다방에서도, 심지어 침실에 누운 채로도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지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는 남자들이 하루의 무게를 견디는 데 담배 한 개비쯤은 허락되던 시대였다.
젊은 혈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셔야 비로소 숨을 고르는 것 같았고, 생각은 연기처럼 퍼졌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것이 위로였는지, 단순한 습관이었는지는 이제 와 분간하기 어렵다.
"나의 긴한숨을 동무하는
못닛게 생각나는 나의담배!
來歷[내력]을 니저바린 옛時節[시절]에
낫다가 새업시 몸이가신
아씨님무덤우의 풀이라고
말하는사람도 보앗서라.
어물어물눈압페 스러지는검은煙氣[연기],
다만 타붓고 업서지는불꽃.
아 나의괴롭은 이맘이어.
나의하욤업시 쓸쓸한만흔날은
너와한가지로 지나가라.” (담배-김소월)
학창 시절 하숙집에서 친구와 나란히 누워 시를 한 수씩 번갈아 외우며 밤을 보내기도 했다. 내가 자주 읊던 시는 김소월의 「담배」였다. 담배 한 대를 손에 쥔 채 시를 외우던 그 밤들 속에서, 시의 연기와 현실의 연기는 자연스럽게 뒤섞였다. 그때의 나는 시를 이해했다기보다 시 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널 끊을 수 있을 거야.”
그럼, 언제나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만 먹으면. 실제로 몇 번이고 끊었다. 다만 늘 작심삼일이었을 뿐!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작심삼일이 쌓인 끝에, 어느 순간 의지가 아니라 몸이 먼저 담배를 버렸다. 세월은 때로는 그렇게 사람의 선택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봐”
생각은 충분히, 아니 지나치게 많이 했다. 그러나 삶에서 어떤 것들은 생각만으로는 정리되지 않는다. 담배 역시 그랬다. 생각과 현실 사이에는 늘 메울 수 없는 골이 깊었다.
"아니야, 우린 사랑이 아니었어”
정말 그랬을까. 적어도 나에게 담배는 사랑에 가까웠다. 나쁜 남자에게 끌리듯, 담배를 멋있게 피우는 여자가 유난히 섹시해 보이던 시절도 있었다. 젊음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상처가 될 줄 알면서도 손을 뻗는 것.
이제 그런 시절은 멀어졌다.
문득 돌아보면, 담배를 피울 수 있었던 그 젊은 추억이 그립다. 삶이 아직 가볍고, 몸이 먼저 반응하던 시절은 이제 연기처럼 사라졌지만, 완전히 흩어지지는 않은 기억들을 가끔은 추억해 보는 것이다.
*시인 장승규 : 경남 사천 출생으로,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거주하며 기업 "Supex Ltd."를 이끌고 있다. 10여 년 전 K장학재단을 설립해 6·25 참전용사 후손들과 한인 동포 자녀들의 교육을 돕는 일에 힘쓰고 있다.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조니님!
이렇게 시에 조예가 깊은 줄 미처 몰랐습니다.
몇 번이나 되돌아와 다시 읽고 있습니다.
멀리 학창시절을 가져오고
귀한 김소월의 '담배'란 시까지 가져다가
멋있는 감상문을 쓰셨네요.
그때의 나는 시를 이해했다기보다
시 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멋있어요.
이번 남아공 <삼일절 한인백일장>에 이대로 출품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출품하시지요.
우수작에 선정되어 남아공 한인문고 <희망봉> 2026호에 게재될 지 모르잖아요.
심사는 남제가 아니라
'시마을 동인협회' 회원들이 하기에 결과야 모릅니다만.
조니님의 댓글의 댓글
아이구~ 작가님께서 이런 귀한 댓글을 남겨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과분한 칭찬과 따뜻한 격려의 말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말씀해 주신 [삼일절 한인 백일장]에 대한 권유도 참으로 영광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만,
이번 글은 제 마음에 아직 다 차지 않아
조금 더 가다듬은 다른 글로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담아 읽어주시고
귀한 말씀 나눠주신 것만으로도
제겐 큰 응원이고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