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손잡이가 달린 슬픔-수몰 지대 =최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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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손잡이가 달린 슬픔-수몰 지대
=최형심
막 헤어진 따뜻한 손바닥 같은 것
비가 오는 날 흐르던 비가(悲歌) 같은 것
별이 첨가된 식단이나
시계 수선공의 느리고 아름다운 은빛 지느러미, 아니면
붉은 여우의 어깨가 놓인 높은 계단참 같은 것
눈 내리는 여행자의 나라에 막 도착한 마음이
삼나무와 물별 사이로 깔리는 복선과 만나는 일 같은 것
밤의 눈동자 속으로 몸을 던진 사람들과
은유의 나라에 밤새 생겨났다
허물어지는 숲과 그 숲에서 자란 한 줄기 문장 같은 것
느슨해진 어둠의 틈으로
굳은 손을 넣어보는 석고상의 마음처럼
밤이 제 몸을 부수며 하얗게 내리는 일 같은 것
초저녁 숫눈을 밟고 와서
마침내 하얀 그림자 품에 안겨 떨고 있는 한 사람에 대해
모른다 말하는 그 입술을 마주하는 일 같은 것
유리로 된 마음이 달빛에 쓸리는 일 같은 것
그러니까……
파란 손잡이가 달린 슬픔 같은 것
《현대시학》 2026년 1—3월호
얼띤 드립 한 잔
시를 읽고 있으면 가끔 억지로 맞추려고 하는 마음과 시어 하나하나가 혹 다른 뜻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부터 갖는다. 그러다가 그럼 그렇지 하며 무언가 통하면 씩 웃어보기도 하고 골목 어딘가 마구 들러붙은 껌종이 하나 뗀 것 모양 기분이 좋을 때도 있다. 시 읽는 방식에 뭔가 문제가 있는 필자지만, 일과 중 이것도 취미라면 나름은 풍족한 삶이다. 가진 건 아무것도 없어도,
시제 ‘파란 손잡이가 달린 슬픔’이다. 부제로 단 ‘수몰지대’. 여기서 파란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물론 일차적인 뜻은 색상이겠다. 시 주체는 어떤 사상을 품었을지는 모르나 객체는 약간의 이질적인 냄새까지 우선 생각게 한다. 이차적인 뜻은 파란波瀾으로 잔물결과 큰 물결로 순탄하지 아니하고 어수선한 상황을 묘사한다. 손잡이, 무언가 붙잡거나 덧붙여 있는 어떤 물질로 뒤에 나오는 슬픔을 꾸민 것으로 보아 마! 떼고 싶은데 억지로 달고 사는 시인의 모습을 연상하게끔 한다.
비가 오는 날 흐르던 비가(悲歌) 같은 것, 전에도 썼지만 비는 雨로 표현한 非의 뜻으로 읽는다. 그러므로 비가처럼 종일 우울하고 어쩌면 비라는 연상 때문에 눈물까지 상상하게끔 한다. 별이 첨가된 식단, 별에 대한 상징은 아무래도 전과의 범행 수로 무슨 꼭지처럼 달고 사는 차림표나 종류 아니면 순서처럼 보이고 시계 수선공의 느리고 아름다운 은빛 지느러미에서 언어를 뜯거나 수리하거나 잇고 끊음이 뭔가 자유스러움이 보인다. 은빛 지느러미에서 물고기를 연상하여 언어까지 확장한다. 시계 수선공처럼 시간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사는 인간(놈 자)처럼 말이다.
붉은여우의 어깨가 놓인 높은 계단참 같은 것, ‘붉은’에서 파란과 또 다른 종류와 어떤 열정적인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여우는 같을 여如 줄 여與 우는 말할 것도 없이 오른쪽을 상징한다. 왼쪽은 죽음을 오른쪽은 삶을 대변한다. 자리를 지키는 쪽과 비가 내리거나 집이거나 벗 혹은 돕거나 근심 이러한 한자어를 생각해 보면 좋을 듯싶다. 어깨는 말씀 어 + 참 깨다. 계단참은 이을 계系에서 끊을 단斷 간여할 참參으로 역시 시인의 식단 앞에서 칼질이 있는가 하면 각종 지느러미를 도마 위에다가 휘둘러 치는 모습까지 연상할 수 있다.
눈 내리는 여행자의 나라에 막 도착한 마음은 시 객체를 묘사하며 삼나무와 물별 사이로 깔리는 복선과 만나는 일은 삼나무가 심어 놓은 식물의 처지로 물별은 이미 죽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복선 꾸미거나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암시를 해보는 것도 아무튼 시인의 일이겠다. 밤의 눈동자 속으로 몸을 던진 사람, 사람은 놈 자者에서 글 자字로 확대하며 본다. 그곳은 곧 은유의 나라일 것이며 그곳은 허물어지는 숲과 그 숲에서 자란 한 줄기 문장 같은,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도 해서 말이다. 하나를 해부하면 무엇이 생겨도 생기기 마련 그러므로 이러한 글쓰기는 생식生殖의 어떤 작용이다. 식殖에 부수는 죽음(歹)을 뜻하는 것으로 모든 생물은 죽음 위에 싹이 튼다.
초저녁 숫눈, 저녁(夕)은 달을 뜻하는 한자어도 있지만, 곧 죽음과 一脈相通한다. 넓게 보아 달은 이상향이며 숫눈은 아주 깨끗한 것으로 누구도 밟지 않은 그야말로 정갈하기 그지 없는 자일 것이며 이를 품은 이가 하얀 그림자 품에 안겨 떨고 있다고 하니깐 김광균 시인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와 조지훈의 승무에서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까지 스쳐 지나간다. 말하자면 언어유희言語遊戲다. 하얀 그림자 품에 안겨 떨고 있는 한 사람 아! 안고 싶고 내려놓고 싶은 마음까지 물론 자다. 언뜻 생기니까 거기다가 모른다 말하는 그 입술을 생각하자면, 아흐 동동다리
유리로 된 마음이 달빛에 쓸리는 일, 이건 또 뭐꼬? 앞과는 또 다른 묘사로 그야말로 섬찟하고도 예리한 칼날에 피부 한 겹 도려낸 듯한 느낌을 받는다. 유리의 차가운 질감과 쓸린다는 동사에서 무언가 날카롭고 예리한 것에 포 한 겹 뜨인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니까 파란 손잡이가 달린 슬픔 같은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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