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서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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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서효인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다시는 못 올 것이라 생각하니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비를 머금은 공장에서
푸른 연기가 쉬지 않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흰 빨래는 내어놓질 못했다
너의 얼굴을 생각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있었다
이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바다가 풍기는 살냄새
무서웠다 버스가 축축한 아스팔트를 감고 돌았다
버스의 진동에 따라 눈을 감고
거의 다 깨버린 잠을 붙잡았다
도착 이후에 끝을 말할 것이다
도시의 복판에 이르러 바다가 내보내는 냄새에
눈을 떴다 멀리 공장이 보이고
그 아래에 시커먼 빨래가 있고
끝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나고
길이 나타나고 여수였다
너의 얼굴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은
세계를 통틀어 여기뿐이므로
표정이 울상인 너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무서운 사랑이 ‘
시작되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494 서효인 시집 ’여수‘
얼띤 드립 한 잔
시제 ’여수‘는 물론 지역명이지만, 또 다른 뜻은 주고받을 수 있는 즉, 줄 베풀 여與에서 받을 얻을 수受까지 확장해서 읽는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가끔은 글을 잊고 살다가 글이 생각나 뒤적거려보는 어느 시인의 시집을 집어보듯 그렇게 삶은 연속적이다. 영원히 잊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잊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찾는 글과 써놓은 글에서 마지막이라며 떠나보낼 때는 어딘가 모르는 비가 내리고 연기 또한 머금은 채 공중으로 흩어진다. 공장과 푸른 연기 그리고 흰 빨래에서 작업과 어떤 이질적인 요소를 발견함과 동시에 더럽혀져 가는 흰색 가운은 그 누구도 관여하지 않은 시인 본인에 있다.
시 두 번째 단락에서는 도시와 바다의 역학관계를 보여준다. 바다가 근원적이고 우주적이라면 도시는 하나의 삶을 대변한다. 도시의 한 요소인 버스는 그야말로 복잡다단하며 복잡다단함 속에 오르내림은 끝없이 펼쳐진 아스팔트와 빨래질 당하는 한 공장의 어느 노동자를 떠오르게 한다. 물론 그 노동자는 시인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보내는 지친 일상에서 저 멀리 바라보는 바다는 고향이나 다름이 없고 바다가 풍기는 살 냄새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물론 시인께서는 무섭다고 했으나 이는 반어적인 표현이 아닐까! 그만큼 도시적인 어떤 냄새를 탈피한 완벽한 길을 찾는 것, 바로 여수였다.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곳, 위로가 될 수 있는 곳, 자위가 아니라 진정 근심을 밀어낼 수 있는 여기서 더 나가, 가슴 한쪽 뿌듯함까지 한 층 더 올려 축축함까지 채울 그 무엇 말이다. 시의 후반부에 들어서면 이젠 완벽한 얼굴을 갖게 된다. 바다와 거의 닮아버린 이곳, 세계를 통틀어 보아도 이곳만 한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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