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혼자서 가라 =최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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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혼자서 가라
=최금진
속편하게 가라,
느타리버섯 같은 암세포가
네 항문을 다 파먹고 이미 내장에까지 뿌리내렸다니
자식 걱정, 와이프 걱정 하지 말고
용감하게, 대한민국 육군하사답게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진격하듯이
그렇게 가라,
나이 서른여덟이면 피는 꽃도 지는 꽃도 아니지
스무평 전세아파트와
현금 이천만원 남겼으면 됐지
가늘게, 가늘게라도
네 외아들에게 원주 전씨 24대를 넘겨줬으면 됐지
아프다고 돌아누워
애처럼 징징거리지 말고
내가 병실문을 쾅 닫고 돌아서서 나온 것처럼
미련 두지 말고
그깟 생명보험 하나 못 들어둔 거
입을 거, 먹을 거, 다 못 누렸다고 원통해하지 말고
저 밤하늘에
곰팡이 포자처럼 둥둥 떠서
혼자 가라,
주섬주섬 짐을 싸서 이사다니던 그날처럼
저승길 외롭다고 누구 데려갈 생각 말고
돌아보지 말고,
살아서 지겨운 가난,
너 혼자, 너 혼자서, 다 끝내고 가라
최금진 시집, 『새들의 역사』(창비, 2007)
흰 가운을 걸치고=鵲巢感想文
이 시의 주안점은 서른여덟에 있다. 그리고 문장을 하나씩 뜯어 맞춰보는 일이다. 물론 시는 사실적인 면을 긁어 치장할 수 있겠지만 문학론적 관점에서 시를 쓰는 것도 중요해서 문장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서른여덟과 대한민국 육군하사 그리고 암세포와 포자, 꽃과 저승길을 떠올려보면 삼팔선과 놈 자者에서 글 字까지, 꾹 닫은 시와 시의 해방을 떠올리게끔 한다. 서른여덟에서 남북으로 갈린다면 한쪽이 지면 다른 쪽은 지상과 경계를 이룬다. 이렇게 두고 읽으면 판이 완전 해독 아닌 해독과 앞뒤 어느 정도 맥이 뚫린다. 시여 속 편하게 가라, 시는 그리움이다. 느타리버섯에서 왠지 늙다리처럼 소리 은유로 보이는 까닭은 아무래도 죽음에 이른 나의 시 읽기에 있겠다. 자식 걱정, 와이프 걱정, 육군하사, 전우의 시체 모두 자字를 상징한다. 스무평 전세아파트 스무고개도 있듯이 맞춰 살아보고 억지로 끼워 맞춰보고 그렇다. 현금 이천만원 현재 금 간 일 천자 월 천자 그 이천 통틀어 문자 체계를 넘겼으면 마 됐다. 가늘게 가늘게, 하지만 원주 그 통으로 전씨 24대 온전할 전으로 돌고 돌아 완벽한 수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시 읽기에서 암세포는 점점 퍼지고 포자처럼 둥둥 떠서 간다. 치타와 표범처럼 허리만 안고 간다. 저승길 외롭다고 뭐라 하지 마라! 살아서 지겨운 이 가난 마 끝내라. 너 혼자, 너 혼자서, 다 끝내고 가라. 시의 일생은 태어나 맞는 죽음이다. 그 죽음을 명예롭게 하는 것은 자字의 승천昇天에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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