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주체 =이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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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주체
=이현승
당신은 웃는다.
당신은 종종 웃는 편인데
웃음이 당신을 지나간다고 생각할 때
기름종이처럼 얇게 떠오르는 것.
표정에서 감정으로 난 길은
감정에서 표정으로 가는 길과 같겠지만
당신이 화를 내거나
깔깔깔 웃겨죽으려 할 때에도
나는 당신이 외롭다.
도대체가 잠은 와야 하고
입맛은 돋아야 한다.
당신은 혼자 있고 싶다고 느끼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곳은 어디인가
외롭다고 말하는 눈,
너무 시끄럽다고 화를 내는 입술로
당신은 말한다.
그렇게 당신은 내가 보이지 않는다.
포기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삶을 지속하는 유일한 조건이 된다.
나는 웃음이 당신을 현상한다고 느낀다.
이현승 시집, 『친애하는 사물들』 (문학동네, 2012)
흰 가운을 걸치고=鵲巢感想文
웃거나 화를 내거나 하는 것은 감정의 세계다. 당신은 웃는다. 당신은 종종 웃는 편인데 웃음이 당신을 지나간다고 생각할 때 기름종이처럼 얇게 떠오르는 것. 상대의 웃음은 즉 감정은 기름종이에 묻어난 피지처럼 화장에 불과하다. 속과 겉이 다르다. 그러니까 피상적으로 묻어난 웃음에 불과하다. 상대가 화를 내거나 웃거나 할 때도 다만 나는 외롭다. 표정에서 감정으로 난 길은 감정에서 표정으로 가는 길과 같겠지만, 하고 시인은 진술한다. 여기서 표정은 마음속 품은 감정이나 정서를 겉으로 드러내는 표정表情이 아니라 표적물의 위치를 말하는 그 표정標定으로 보이는 이유는 뭘까? 표정이 되는 지역은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 그러므로 나는 외롭다. 당신은 화장하고 누구를 만나는지 혹은 만났는지 알 수 없지만, 그건 내가 옆에 있어도 말이다. 도대체가 잠은 와야 하고 입맛은 돋아야 한다. 이는 실체의 정의다. 실체는 있지만, 실체를 느낄 수 없는 몸 하지만 실체는 분명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으니까. 진정 마음은 딴 데, 가 있으니까. 그러므로 이곳은 어디인가? 하며 자아는 반문한다. 나는 당신 옆에 있지만, 당신은 나를 볼 수가 없다. 오로지 화를 내거나 웃거나 하는 피상적으로 드러내는 감정만 있을 뿐 표정에 닿지 않는 감정에 나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에 포기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내가 살고 네가 사는 유일한 조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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