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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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이병률
오늘도 새벽에 들어왔습니다
일일이 별들을 둘러보고 오느라고요
하늘 아래 맨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압정처럼 박아놓은 별의 뾰족한 뒤통수만 보인다고
내가 전에 말했던가요
오늘도 새벽에게 나를 업어다 달라고 하여
첫 별의 불꽃에서부터 끝 별의 생각까지 그어놓은
큰 별의 가슴팍으로부터 작은 별의 멍까지 이어놓은
헐렁해진 실들을 하나하나 매주었습니다
오늘은 별을 두 개 묻었고
별을 두 개 캐냈다고 적어두려 합니다
참 돌아오던 길에는
많이 자란 달의 손톱을 조금 바짝 깎아주었습니다
이병률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지, 2017)
흰 가운을 걸치고=鵲巢感想文
이 시를 읽으며 느낀 점은 시학은 평생 취미로 가져볼 만하다는 것과 아예 근접도 말아야 한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중독이다. 그렇다고 멍하니 앉아 지나는 꽃들만 바라보고 있자니 심심하고 안 피는 꽃, 오지 않는 꽃에 더 심란한 살림은 내가 죽을 지경이다. 살아 있으니까 팔에다가 약 빵빵 주사를 놓고 쿰쿰 철 냄새나 맡으며 가는 것도 괜찮다 생각한다. 살림은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 살아가는 형편이나 정도 집 안에 주로 쓰는 세간이다. 사전적 의미와 다르게 어떤 생존에 닿는, 아니 의무라고 보기에도 그렇고 그러니까 눈 떠 있으니까 혼을 위한 뜨개질 같은 것이 떠오른다. 새벽, 새로운 벽 아니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백지 한 장을 은유한다. 마음과 공백 사이는 늘 새벽이다. 여기서 별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상징한다. 시와 마주하면 금시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렴풋이 뭔가 떠오르다가 다시 읽을 때 다가오는 느낌 같은 것, 그 처음에서 번개처럼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불꽃이라 하면 추상적인 그림에서 구체화한 건축물을 끝별의 생각으로 정의해 본다. 처음은 눈빛에 홀려 사모하다가 이별 끝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처음은 큰 별처럼 가슴으로 느끼다가 그 끝은 작은 별로 눌러 앉아버리고는 멍이 생겨난다. 멍은 자리다. 그것이 시퍼렇든 벌겋든 마음 한구석을 움푹 도려냈으니까! 그 사이사이를 팽팽하게 조율하며 조개를 굽는 일 역시 시인의 일이며 살림이다. 오늘 별 두 개를 묻었다. 첫 별과 큰 별이겠다. 별을 두 개 캐냈다고 적을 것이다. 아직 구체화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구상은 됐으니까 바로 끝별의 생각과 작은 별의 멍이겠다. 참 돌아오던 길 많이 자란 달의 손톱을 바짝 깎는다. 시를 써 볼 것이다. 달은 이상향 즉 완성된 마음을 상징한다면 손톱은 딱딱하고 견고한 손+가락 그 끝에 얇은 조각들로 마음의 파편을 상징하겠다. 새벽에 업혀 닿는 일 그 순서에 있어 먼저도 톱(to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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