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이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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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이우디
우는 얼굴이 웃으며 지나간다
입이 막힌 영상을 보다가
봄이 죽은 소식을 읽는다
너머에서는 총알이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는 소식이 자막으로 흐른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가게가 붐빈다
급발진한 말들이 꽃보다 붉다 개나리가 만발한 들판에서 잠시 죽어도 될까 귀를 세우고 죽은 봄을 기다린다 오지 않는 얼굴을 미리 읽는다
웃으며 지나가는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 농담을 끝내고 싶은데 화약 냄새가 닫힌 문을 열고 들어온다 얼룩진 군복의 탈주병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나를 겨냥한 말들이 앞발을 세운다 눈을 가린 나는 바람에 올라탄다
나의 무게를 견디는 게 무엇인지 묻는다
대답이 없다
자연처럼 무안하지 않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베일을 벗은 오늘을 아름답다 해야 할까 외출하지 않는 날이란다 언제부터 법정 기념일로 지정되었는지 나만 모르는 날이 웃으며 지나가는 걸 본다 혼잣말이 빅스비를 호출한다
“우크라이나를 틀어줘”
“헤네시 파라다이스 불러줘”
이스라엘이 지나간다 냉담한 전쟁이 지나간다
농담이 지나간다
격월간 《현대시학》 2024년 7-8월호, ‘개활지의 시’ 우승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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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디 서울 출생. 2019년 《문학청춘》 신인상 시 당선. 2023년 열린시학상 수상. 시집 『수식은 잊어요』. 제주시 거주.
흰 가운을 걸치고=鵲巢感想文
시제 농담濃淡은 짙음과 옅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겠다. 마치 팔레트 위 각종 어휘를 갖고 붓으로 뭉개 가며 찍어 바른 하나의 미술작품처럼 말이다. 그럼 시를 한 문장씩 뜯어 본다. 우는 얼굴이 웃으며 지나간다. 우는 얼굴에서 우는 현실 세계를 반영하며 얼굴은 마음을 상징한다. 웃으며 지나간다는 것은 자기를 비웃는 일 자조自嘲다. 그러니까 현실 세계를 마음이 잘 받아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입이 막힌 영상을 보다가 봄이 죽은 소식을 읽는다. 입과 봄은 입구와 출구 혹은 출구와 입구를 제유한 것으로 마음의 상황적 묘사다. 가령 입이 막힌 영상을 본다는 말은 들어가고 싶은데 표현을 못하는 상황을 봄이 죽은 소식을 읽는다는 말은 봄처럼 피고 싶은데 이미 죽은 시만 읽는 상황이다. 너머에서는 총알이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는 소식이 자막으로 흐른다. 너머는 다른 쪽 세계관을 비추며 그 세계관을 꿰뚫고 지나간 탄환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다른 쪽 세계는 이미 파악했지만, 이쪽 세계는 아직 못 뚫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가게가 붐빈다. 놈 자者든 글 자字든 가게라는 처소를 빌어 붐빈다는 동사로 마음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무도 없는데 마음은 뭔가 뒤엉켜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급발진한 말들이 꽃보다 붉다. 꽃은 식물계며 저쪽 세계를 비추고 있다. 꽃보다 급발진한 거로 보면 무언가 횡설수설 마구 붓질한 걸 알 수가 있다. 개나리가 만발한 들판에서 잠시 죽어도 될까? 개나리 역시 이미 심어놓은 식물계라면 꽃보다 협소적인 개념으로 어느 한 특정한 나무를 지목한다. 그러니까 어떤 한 시에 심취한 마음을 볼 수 있다. 귀를 세우고 죽은 봄을 기다린다. 물은 그냥 오르지 않는다. 마중물을 넣고 펌프질해야 지하 깊숙한 물을 끄집어낼 수 있듯이 개나리뿐만 아니라 개망초 병꽃나무 팥꽃나무 등등 이리저리 섭렵해야 할 것이다. 오지 않는 얼굴을 미리 읽는다. 미리 짐작해 본다. 웃으며 지나가는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역시 자조다. 이 농담을 끝내고 싶은데 화약 냄새가 닫힌 문을 열고 들어온다. 마음의 짙음과 옅음. 즉 상황을 끝내고 싶다. 하지만, 끝내지 못하는 시인 다만, 저쪽 세계관의 이해만 가진 상태다. 화약은 아까 총알이 발사한 것에서 마음을 뚫고 지나간 흔적의 은유다. 다른 말로 안개 혹은 낙서 같은 것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얼룩진 군복의 탈주병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얼룩진다는 것에서 좋지 못한 요소가 섞인 걸 알 수 있고 군복에서 어떤 정형화한 형식을 반영한 거라면 탈주병은 자를 상징한다. 굳게 닫은 혹은 갇혀 있는 자가 제 마음대로 튀어나갔으니까 탈주병에다가 비유할 만하다. 글이 어찌 되었든 간에 마구 쏟아짐을 읽을 수 있다. 나를 겨냥한 말들이 앞발을 세운다. 그냥 각종 어휘가 튀어나왔다. 눈을 가린 나는 바람에 올라탄다. 일단은 펼쳐놓은 백화 꽃잎에다가 마음을 펼쳐 보는 일이다. 수정과 퇴고는 나중 일이다. 나의 무게를 견디는 게 무엇인지 묻는다. 무게에서 시인은 견딜 수 없는 어떤 압력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고 그 외부의 힘에 의한 내부의 심적 부담을 읽을 수 있다. 사람은 어떤 힘에 감당을 못할 땐 글은 그 힘에 대한 하나의 저항을 불러 마음의 안정을 취한다. 대답이 없다. 현실에 대한 답은 없고 자연처럼 무안하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자연스럽게 봄이 오면 봄이 오는 것이고 여름이면 활짝 내보였다가 가을이면 단풍잎처럼 간당거리다가 겨울처럼 죽음을 맞는 게 모든 생물의 이치다. 그렇다고 영원히 죽음을 맞는 것도 아니니 다시 또 봄이 오니 나는 무엇으로 이 세상 아니 이 우주를 대하며 있을 것이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베일을 벗은 오늘을 아름답다 해야 할까, 오후는 오후午後이면서 오후吾後이자 오후烏侯다. 그러니까 오후라는 시간적인 개념에다가 오후라는 자아를 심는 일은 역시 오후 까마귀 그 검정에 비유할 만하다. 두 시, 저쪽 마음과 이쪽 마음을 상징했다면 베일에서 어떤 가면을 벗은 기분 그러니까 마음이 어느 정도 풀렸다는 얘기다. 외출은 내부 세계에서 외부 세계로 감행하지 않은 어떤 습작의 단계를 의미하며 법정 기념일은 그 마음을 지정해 놓고 살피겠다는 말이다. 법정 기념일은 법률로 지정한 기념일이자 공휴일은 아니라는 점, 공휴일처럼 놀고 보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꾸준히 일과 성을 다해서 살펴야겠다. 혼잣말이 빅스비를 호출한다. 빅스비는 자문자답을 상징한 것으로 계속 돌려보는 마음이겠다. 우크라이나를 틀어줘 우크라이나는 동유럽 흑해 북쪽에 있는 국가로 흑토 평원에 있는 최대의 곡창지대다. 그러니까 최대의 생산성을 반영한 그 영역을 상징한 것으로 틀어줘 마치 티비의 KBS, MBC 방송국 돌려보듯이 방향 전환을 모색한다. 헤네시 파라다이스 불러줘, 헤네시 파라다이스는 명품 술의 일종으로 가격이 무려 이 백만 원에나 호가한다. 술 좋아하는 필자는 특히 브랜디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리 호가 높은 술은 아직 못 마셔봤다. 이런 술을 못 마시니 가치 있는 시가 나올 리가 있나! 아무튼, 입술을 상징한다. 들어가는 손기술이겠다. 이스라엘이 지나간다. 냉담한 전쟁이 지나간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이 건국한 나라 이름으로 그 유대紐帶 끈과 띠라는 말로 서로 연결하고 결합하는 단단한 돌멩이 같은 시 그 영역을 상징한다. 냉담한 전쟁은 내면의 검정과 외면의 흰색과 싸움을 상징하며 농담이 지나간다. 마음의 옅음과 짙음은 이걸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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