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사 한 채 =공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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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한 채
=공광규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브이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 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꽃살문 스치는 바람 소리를 냅니다.
공광규 시집,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
공광규 1960년 충남 청양 출생 동국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1986년 ≪동서문학≫ 등단 1987년 《실천문학》에 현장시들을 발표 2009년 제4회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2010년 제1회 김만중문학상 시부문 금상 2011년 제16회 현대불교문학상 시부문 시집 『대학 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덩이』 『담장을 허물다』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등
흰 가운을 걸치고=鵲巢感想文
시인의 아내 사랑을 본다. 피상적으로 읽으면 아내 사랑이다. 부부는 아내 사랑이 곧 자기애며 지기다. 아내가 마치 안 해처럼 들리는 이유는 뭘까? 나 얼마만큼 사랑해, 속은 늘 이렇게 묻는다. 그러게 말이다. 명태 어의 한 종류 이외 어둡거나 밝거나 그 명 목숨이거나 새기거나 명에 태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신혼 새로운 혼을 불러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냥 무량하다. 마음의 깊이를 누가 알겠는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그만큼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렇다.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가 굳이 시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주방과 화장실 거실뿐만일까! 깨어 있으면 그 절간 통째로 이고 다닌다. 술 먹고 늦게 들어가는 일은 흔하고 목탁은 안 울리는 날이 없고 아이들은 오늘도 행렬로 사열하고 있다. 그러면 속이 맑다 못해 후련하다. 침대 가라앉은 것도 담근 것도 잠자고 입 맞춘 것도 모두 침대 그 위였다. 훈훈하다. 대웅전 꽃살문이 따로 없다. 그나저나 이 시를 읽고 나니, 아내에게 참 미안하기 그지없다. 따뜻하게 안아 준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행복은 돈이 아니잖아요? 돈 있는 사람들의 얘기다. 점점 궁핍한 세월에 점점 시간은 쫓기며 사니, 마음 한 구석 늘 멍이 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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