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나무 붓글씨 =공광규
페이지 정보
작성자본문
미루나무 붓글씨
=공광규
시냇가 미루나무 여럿
들판 캔버스에 그림을 그립니다
바람 부는 날은 더 열심히 그려댑니다
곧은길만 가기 어려운 사람 발걸음을 생각해
논둑과 밭둑과 길은 휘어지게 그리고
높이 떴다 지는 둥근 해가 다치지 않게
산 능선을 곡선으로 그립니다
미루나무도 개구쟁이 아이를 키우는지
물감통을 들판에 확! 엎지를 때가 있습니다
미루나무도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이 되면
붓을 빨러 냇물로 내려가다 뒹구는지
노란 물감을 하늘에 뿌리거나
언덕에 물감을 흘려놓기도 합니다
미루나무의 실수는 천진해서 별이나 풀꽃이 됩니다
이런 미루나무도 심심한 날이 있어서
뭐라 뭐라 허공에 붓글씨를 쓰기도 하는데
나는 어려서 꼭 한 번 읽은 적이 있습니다
“광규야, 가출하거라.”
공광규 시집,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
공광규 1960년 충남 청양 출생 동국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1986년 ≪동서문학≫ 등단 1987년 《실천문학》에 현장시들을 발표 2009년 제4회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2010년 제1회 김만중문학상 시부문 금상 2011년 제16회 현대불교문학상 시부문 시집 『대학 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덩이』 『담장을 허물다』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등
흰 가운을 걸치고=鵲巢感想文
이 시를 읽고 첫 감정은 한마디로 익살이다. 재밌다. 미루나무는 식물계다. 미루어서 하지 않은 일이 있는 것처럼 그런 느낌까지 든다. 들판은 마음을 상징한 시어며 캔버스는 여러 마음 중 한 장을 뜻하겠다. 여기 마음을 그려 넣는 일, 처음부터 곧은 길이 생기랴! 낙서처럼 오물처럼 처음은 다 그랬다. 개구쟁이 아이를 몰아넣기도 하고 돌배인지 감인지 분간이 어렵다가도 사과나무 아래서 한숨을 쉬기도 했다. 앤더스 에릭슨이 말했던가, 특정 분야에 전문가 수준에 도달하려면 최소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작 한 해 두 해 했다고 어깨 나란히 하려는 자 그게 이상한 자다. 어떤 일을 한 십 년 해도 늘 새롭다. 세상은 출렁이는 물 잔이다. 그것을 들고 종일 뛰어다니는 기분이다. 언제나 수평을 이루며 균형을 유지하는 경우는 없다. 뭐가 하나 틀어져 있다가도 뭔가 새로운 것이 튀어나오는 시장, 그러므로 시장을 보면 늘 불안하다. 세상은 미루나무처럼 실수가 있어도 일단 확 들어붓고 시작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것이 별이 됐든 풀꽃이 됐든 불부터 지르고 본다. 가출, 그래 집에 들어앉아 있는 자식을 보면 답답하다. 작소야 마 됐다. 고마해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