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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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이은주
산부인과가 무너졌다
내가 태어났던 곳이다
무너진 산부인과는 내가 이십 년 전 빠져나온 초등학교를 덮쳤다 초등학교는 중학교가 되어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덮쳤다 계속해서 내가 나를 덮쳤다 도미노처럼 건물이 무너지고 나는 어쩌다 언니가 되었을까
돌다리를 두들기면서 건너던 언니
첫 번째 돌은 도고 두 번째 돌은 레야
그러면 세 번째 돌은?
미치겠지
두 번째 돌을 밟지 않고 건너는 언니
도미노
세상이 무너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건
세 번째 돌 위에 서서 우두커니 서 있자
건너편에서 껑충껑충 건너와
내 손에 꼬옥 쥐여준 쪽지
무리한 부탁인 줄 알지만,
살아가셔야 합니다.
(싫어요. 제가 왜요?)
우웅— 울리는 휴대폰
내가 다니는 회사가 무너졌다는
그런 기쁘고 슬픈 메시지
(이런 데도요?)
우웅—
엄마가 되었다는 언니
조금 전 무너졌던 산부인과
앞에 있는 나
언니의 딸은 레나
레나가 걸어서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면
이 산부인과는 또 무너질 거야
그리고 또다시 누군가 태어난다면
다시 일어났다가
또, 무너지겠지
우리 레나
엄마 속 썩이지 말고
쑥쑥 잘 자라야 한다
《포엠피플》 2026 봄호
이은주 1995년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23년 제1회 《포엠피플》 신인상으로 등단.
흰 가운을 걸치고=鵲巢感想文
지금 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산부인과를 들여다보고 있다. 여기서 산부인과는 삶의 원초적原初的이며 근원적根源的인 무대다. 도미노는 어떤 한 패가 연쇄적連鎖的으로 무너지듯이 인접 지역까지 그 영향이 간다. 일단 산부인과에서 삶이 주어졌다는 의미는 나라는 개념과 의식이 생겼다는 말과 같다. 여기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니까 학업이나 기타 모든 의식까지 나아졌다는 말과 같다. 언니라는 말도 참 재밌다. 말씀 언言에 니다. 그 언니는 돌다리를 두들기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마치 다른 돌을 얻기 위한 주술적 행위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첫 번째 돌은 바탕이며 굳이 다른 뜻으로 돌리자면 ‘산부인과’, 산부인과라는 원음의 뜻은 여기서는 버려야겠다. 다음 돌은 ‘레야’ 두 번째 돌은 밟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완벽한 세계를 벌써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번째 돌 위에 서서 우두커니 서 있자고 한다. 돌은 완벽해야 하지만, 돌은 언젠가는 무너진다는 사실까지도 우리는 알고 있다. 삶은 이어야 하고 그 믿었던 돌은 깨지고 정말 완벽한 돌은 무엇일까? 엄마가 된 언니, 언니의 딸은 레나, 레야의 사촌과 같은 자의 세계는 또 무엇을 바라보며 어떤 가치관을 심을까? 세상 완벽한 것은 없는 거 같다. 모든 것이 변화고 또 무엇인가 일어나는 세상, 나사(NASA)의 지구물리학을 연구하는 어느 학자였다. 인류 이전에 지구에 문명이 있었다는 말, 그러니까 지구의 지각은 지구의 역사 속에서 여러 수십 번이나 바뀌었고 뒤틀렸다. 인류가 낳은 모든 물질도 다시 흙과 재로 돌리는 시간마저 극히 짧은 시간에 불과하니까, 수천만 년을 지나 지각을 확인하면 다만 어떤 단층구조만 남아 있듯이 지구는 인류 이전에 또 다른 문명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이론을 제기했다. 정말 아득한 시간이다. 언젠가는 태양도 그 기운을 다할 것이고 우주는 또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가 살아 있지는 않지만, 시간과 공간의 어느 한 지점에서 유람하는 듯한 지금, 돌처럼 무엇을 바란다는 건 어찌 보면 무의미하고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 그렇지만, 돌처럼 단단한 삶을 영위하는 일은 우리가 바라는 희망이 아닐까! 회사가 무너지고 산부인과가 무너지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마저 순차적으로 무너지는 세계에 있다. 심지어 내가 삶을 영위하는 근본적인 밑바탕마저 뒤흔든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지금 정말 나는 무엇으로 또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삶을 이어나가야 한단 말인가? 지구의 역사에 비해 극히 짧은 이 한목숨의 생도 분간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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