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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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소리
김지명
파도소리 들린다. 부산 장자산 기슭에 접하여 살지만, 파도소리를 자주 듣지 못했다. 시월의 마지막 주말 산을 넘어 해변으로 가려고 도심을 벗어나 산기슭에 다달았다. 재재거리는 산새 소리와 개울에서 졸졸거리며 흐르는 물소리 들으면서 바다 언저리에 다다랐다. 장자산 갈맷길 따라 파도소리 밟으며 걷는다. 먼바다에서 태평양 소식을 안고 밀려오는 파도는 계절과 기후에 따라 높낮이가 다르다. 낮은 파도는 낭만적인 소리를 연출하지만, 높은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바다가 고요한 날이면 산속의 호수처럼 거울 속을 훤히 보여준다. 동풍이 불어오는 계절에는 은빛 윤슬을 부수며 일렁거리는 파도는 소리마저 한가롭다.
나는 개성 있는 감성으로 파도소리를 즐기려고 바다를 언저리에 앉는다. 어떤 음이든 들을 수 있다면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고요한 바다는 죽음과 마찬가지다. 움직이지 않고 멈춰있어 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해변서는 여러 종류의 파도소리로 이어지지만, 듣는 나에겐 울림의 강도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달라진다. 파도소리 중에서도 들어서 기분이 좋아질 때와 신경을 날카롭게 하여 스트레스를 받는 상반된 음이 서로 맞물려 있다. 작은 물결소리도 개성에 따라 느끼는 감성이 다르다. 파도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 목을 길게 뺀 등대는 밤낮없이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넓은 바다에서 발생한 낮은 파도가 자갈밭으로 오르내릴 때 가벼운 소리를 낸다. 힘없이 밀려오던 파도가 해변에 길게 누울 때 모래사장과 키스하는 소리가 생동감 넘친다. 밀려오다가 다시 물러나기를 반복하던 파도가 속을 훤하게 보이며 알몸으로 자갈과 피부를 맞댄다. 파도가 주는 사랑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 몽돌은 벌거벗은 채로 바닷물에 안긴다. 파도는 작은 돌멩이를 와르르 밀어내다가 다시 물속으로 끌어당길 때 아름다운 소리를 연출한다. 높은 파도가 거칠게 몰아칠 때 바위는 짠물로 샤워하며 때로는 물속에 잠기기도 한다. 잠수하고 나온 바위는 물의 품에서 벗어나 서운해하지만, 염분을 발라준 덕에 소독하였다. 물가에 바위는 가까이에서도 파도를 만져보지 못하여 늘 아쉬워하며 태풍이 불어오기를 학수고대한다.
일본 근해에서 밀려오는 파도는 무슨 소리를 안고 오는지 귀 기울여본다. 파도는 돌고래의 장난소리와 상어가 여유롭게 배회하며 신호하는 소리가 있다고 물보라로 알려준다. 큰 배에 앉았을 때는 어군탐지기로 많은 소리를 도청할 수 있다. 조각배에 앉아있으면 일렁거리는 물결은 배 곁에서 철썩이고 하늘은 물결처럼 흔들거린다. 같은 파도의 높이라도 밤에는 또 다른 소리로 들려온다. 주위가 어둠 속에 잠겨 만물은 잠들었지만, 파도는 철썩대며 살아 움직인다. 고요 속에 가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무엇을 기다리듯 애절한 소리로 위치를 알린다. 파도가 없는 날 밤낚시를 즐기는 강태공은 소리 없이 야광에 빛나는 웃기만 내려다본다. 대어를 건지겠다는 각오로 파도소리를 벗 삼아 잠까지 접어놓고 충혈된 눈으로 밤을 새워가며 파도소리만 낚는다.
파도소리는 계절마다 또는 아침저녁에 느끼는 감성이 다르다. 칼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는 해변이 미끄러워 물가에 가까이 갈 수가 없다. 멀리서 들으면 소리의 감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작은 소리에서 벗어나 크고 우렁찬 파도 음을 듣기 위해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다시 찾았다. 파도의 성난 모습 보려고 해변에 왔지만, 얼음이 얼어 뭍으로 갈 수 없어 높은 언덕 위에 올랐다. 병정놀이하듯 횡으로 줄지어 밀려오는 파도가 날개를 단 듯 물보라를 흩날린다. 세찬 칼바람이 파도의 볼때기를 때릴 때 화풀이하려던 파도는 해변에 잠자는 바위를 집어삼킨다. 뒤따르던 파도가 높은 바위에 부딪힐 때 하늘 높이 물기둥을 세우며 한없이 치솟는다.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던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더니 물거품으로 사라진다.
부드러운 파도소리를 듣기 위해 가두리 양식장 언저리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쫑긋 세워서 들어본다. 맑은 날 실바람에 물결의 흔들림이 느려서 파도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계곡에서 폭포는 시원한 소리를 내면서 파도를 만들어 냈다. 강물은 상류와 하류가 다른 소리를 내면서 흐르지만, 소슬바람은 많은 리듬을 연출한다. 강 언저리에서 지다 남은 이파리가 타악기를 두드리듯 빠르게 팔랑댄다. 낙동강물이 강둑에서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가 애잔하게 들린다. 가을이기 때문이다. 강물이 바다와 접하는 곳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다. 자연의 섭리인가? 화합의 일치인가? 신비와 경이로 가득한 아우라지의 위대한 현장이다. 바다는 움직이지 않아도 살아있지만, 강물은 멈추면 죽는다.
계절에 따라 호수의 물처럼 고요한 바다도 있다. 바람이 없이 고요한 날 은빛 윤슬을 일렁이는 파도는 소리도 없다. 낮은 파도가 동굴 속으로 밀려들 때 들려오는 소리는 음울한 느낌을 준다. 해수욕장에서 인간들의 알몸을 어루만지던 파도가 소리 없이 사라지기가 아쉬워 요동칠 때도 있다. 바로 태풍이 밀려올 때다. 해변에서 높은 파도를 볼 때 여러 소리의 경험담이 생각난다. 태풍이 가져다준 소리 선물이다. 파도의 높이가 다양하므로 소리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크고 작은 음이 끝없이 이어졌다.
울릉도에서 소리에 놀랐던 때를 추억한다. 한 일 월드컵이 열리던 해 팔월 마지막 주말에 거센 파도를 넘어 울릉도에 갔다. 태평양의 동쪽에서 한반도를 덮치려는 파도를 막아주는 울릉도는 늘 거센 파도와 싸운다. 먼바다에 파도가 높아 출항을 못 한다는 방송을 듣고 구경을 나왔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하늘로 치솟던 물보라가 부서지더니 형체도 없이 소멸하였다. 벌거벗은 바위가 그립다던 파도가 알몸으로 밀려올 때 만져보기도 하고 바위도 문질러보았지만, 파도가 철썩이며 입맞춤하는 소리만큼 감미로울 수 없었다. 작은 소리로 속삭이며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연일 피부접촉으로 이어진다.
파도 소리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 물거품으로 사라져 버리는 파도지만, 지면과 부딪칠 때 자연이 연출하는 색다른 리듬의 소리를 즐겨 듣는다.
댓글목록
대기와 환경님의 댓글
수필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셨습니다.
자주 좋은 글 올려 주시길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 하시길!...
지명이님의 댓글의 댓글
고맙습니다.
대기와 환경님 반가워요
자주 들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