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만든 사내와 기억을 팔아먹은 마을 - 풍자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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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만든 사내와 기억을 팔아먹은 마을
( “잊어야 할 것도 기록해놓고 살더라잉”)
길도령이
이번엔 **‘맞춤형 인생 달력’**을 만든다고 했제.
“여 보슈!
당신 생일, 결혼기념일, 손주 돌잔치, 이혼날짜,
몽땅 표시된 달력 특별 제작!
게다가 과거 실수까지 체크해드립니다잉~”
사람들은 우르르 사댔제.
“잊을까 봐 무서운디,
이젠 달력이 기록을 다 해주니 맘이 편하제잉~”
근디 문제는
달력 곳곳에 붙은 붉은 글씨.
“작년 5월 12일 – 시어머니한테 큰소리친 날”
“6월 8일 – 빚쟁이 들이닥친 날”
“9월 2일 – 혼자 울던 날 (소주 3병)”
달력을 볼 때마다
지난 날의 찔림이 먼저 보였제.
“내 인생이 전부
기억용 꼬리표가 돼불었네잉…”
사람들은 달력을 찢지 못하고
달력대로 살았제.
“오늘은 작년에 싸운 날이니
조심해야제…”
“어제는 내가 울던 날이었으니
오늘은 애써 웃어야제…”
그렇게 하다 보니
지금 이 순간은
늘 작년 그림자에 갇혀 살았제.
근디,
어느 아이의 책상에서
작은 공책 하나가 발견됐제.
맨 앞장엔
딱 이렇게 쓰여 있었제.
“기억은 간직하는 게 아니라
가끔씩 비우는 거여잉.
꼭 껴안고 살믄,
내 등이 휘어불더라.”
길도령은 달력을 접어 연을 만들었제.
하늘로 훨훨 날리며 말했제.
“기억도 바람 타야 살고,
날려보내야 웃을 수 있다잉…
안 그럼,
오늘은 매일 어제 속에 갇혀불제.”
지금 마루골 사람들은
달력 대신
빈 종이 한 장을 벽에 걸어놓고 살제.
그날 있었던 일은
밤에 조용히 접어 물에 띄우고
다음 날을
빈 마음으로 맞이한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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