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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송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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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510회 작성일 23-12-30 14:33

본문

눈 송아리

                                 /장승규



건너편 벚나무숲에

이른 아침부터 송이눈이 내린다


봄 아닌데

나무마다 꽃이 피듯

만 가지에 달리는 송아리


늙은이 머리에 앉은 

송이눈은

봄이 되어도 녹지 않을 텐데 


늦은 오후 드니

이제 실시간 폭설이다


여기 백발도 곧 

송아리 여럿 달리겠네



(남아공 서재에서  2023.12.30)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동인님들!

2024 갑진년, 새해
늘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최시인, 허시인이 보내준
고국에 오늘
눈 내리는 동영상을 보고 즉흥에 겨워
읊어봅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상문: 백발 위에 피는 늦은 눈꽃 – 장승규의 〈눈 송아리〉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시 〈눈 송아리〉는 겨울의 눈 내림을 통해 시간과 노년, 그리고 생의 덧없고도 아름다운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눈은 단지 계절의 풍경이 아니라, 늙어가는 한 존재의 모습, 그리고 그 안에서도 피어나는 삶의 정서를 은유하는 시적 장치로 기능한다.

“건너편 벚나무숲에 / 이른 아침부터 송이눈이 내린다”—시작부터 시인은 풍경을 통해 시의 정조를 그려낸다. ‘송이눈’이라는 말은 단순한 ‘눈’보다 더 감성적이고 부드럽다. 그것은 바람결에 흩날리는 하얀 꽃잎 같고, 겨울에 피는 조용한 생명처럼 느껴진다.

“봄 아닌데 / 나무마다 꽃이 피듯 / 만 가지에 달리는 송아리”—이 구절은 이 시의 가장 아름다운 역설을 드러낸다. 봄도 아닌데 나무에 ‘꽃’이 피었다는 말은, 자연이 계절을 거스르며 뜻밖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그 ‘송아리’들은 눈꽃이면서 동시에 삶의 마지막에서도 피어나는 정감이기도 하다. 이 겨울은 스러지는 계절이 아니라, 또 한 번 무언가가 피어나는 계절이 된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시인은 눈송이를 “늙은이 머리에 앉은” 장면으로 전이시킨다. 백발 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는 송이눈. “봄이 되어도 녹지 않을 텐데”—이 구절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생의 겨울에 접어든 이의 머리에 내리는 눈은, 이제 쉽게 사라지지 않는 어떤 상징이다. 그것은 시간의 흔적이자 삶의 결실, 혹은 정지된 생명력이다. 이 눈은 단순히 녹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존재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늦은 오후 드니 / 이제 실시간 폭설이다”—시간의 흐름에 따라 눈발은 더욱 거세진다. 여기서 ‘실시간’이라는 말은 일상 언어처럼 보이지만, 시 속에 들어오며 매우 감각적인 긴박함을 준다. 노년의 시간이 속도를 내며 지나가고 있다는 암시처럼도 읽힌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
“여기 백발도 곧 / 송아리 여럿 달리겠네”—시인은 마침내 자기 자신으로 시선을 옮긴다. 나이 든 자, 이제 곧 백발 위로도 눈꽃처럼 ‘송아리’가 내려앉을 것이다. 이 구절에는 체념보다는 담담한 수용이, 쓸쓸함보다는 어쩐지 고운 슬픔이 깃들어 있다.

마무리
〈눈 송아리〉는 한겨울의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 존재의 마지막 계절을 조용히 비추는 시다. 흰 눈이 소리 없이 나무 가지에 앉듯, 시간도 그렇게 사람의 어깨에, 머리 위에, 마음에 내려앉는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비극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답고 섬세하게, 그것이 ‘꽃처럼’ 피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이 시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비록 봄은 아닐지라도, 인생의 마지막에도 꽃은 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송아리 같은 순간을 얼마나 귀히 여기고 있는지를 스스로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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