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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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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9건 조회 732회 작성일 23-01-04 11:07

본문

첫눈

                                     /장 승규



이른 아침부터

용인 동백골에 온다는 첫눈이

낯설다

 

눈 없는 여기

요하네스버그에 온 지 

서른다섯돐

그 즈음에 동백골 떠나왔으니

눈 없이 산 세월이나

눈 보며 산 세월이나


그대

나처럼 늙어가고 있을까 

지금은

첫눈처럼 낯설지나 않을까

 

조근조근

이른 아침부터 내리는 빗소리는

설득력이 있다



(남아공 서재에서 2022.12.13)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장 승규 시인의 〈첫눈〉은 눈 내리는 풍경을 빌려, 고향과 타지, 세월과 그리움, 낯섦과 익숙함 사이를 섬세히 오가는 기억의 서정시입니다. 고향을 떠난 자의 깊은 내면 풍경과, 낯선 땅에 오래 머문 이방인의 정서, 그리고 세월이 만든 정직한 회한이 담담하게 녹아 있습니다.

● 시 감상문
1. “용인 동백골에 온다는 첫눈이 / 낯설다” – 거리감이 만들어낸 감정의 반전

눈은 보통 그리움과 반가움의 상징이지만, 이 시에서는 “낯설다”로 시작됩니다.
이는 눈이 낯설어진 삶—즉, 고향과 단절된 시간의 길이를 상징합니다.
눈 소식조차 머릿속에서 흐릿해질 만큼, 이 시의 화자는 이방인의 시간에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2. “요하네스버그에 온 지 / 서른다섯돐” – 공간의 전환과 세월의 각인

‘서른다섯 돐’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숫자 이상으로 삶의 굵직한 무게를 보여줍니다.
이방인으로 산 시간이 고향에 산 시간보다 길어졌음을 뜻하며,
이 시는 단지 첫눈을 말하는 시가 아니라, 삶의 절반 이상을 외지에서 살아온 자의 기록입니다.

3. “눈 없이 산 세월이나 / 눈 보며 산 세월이나” – 시간 앞의 평등 혹은 체념

이 대목은 삶에 대한 담담한 태도, 혹은 체념 섞인 철학적 인식을 보여줍니다.
결국 눈이 있든 없든, 삶은 흘렀고, 그 시간은 고르게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 뒤에 숨은 뉘앙스—눈 없이 살아낸 세월이 더 아득하고, 더 묵직하지 않았을까 하는 여운이 남습니다.

4. “그대 / 나처럼 늙어가고 있을까” – 존재의 회귀, 이름 없는 그리움

갑작스레 등장하는 “그대”는 화자의 고향, 또는 그곳에 두고 온 사람, 사랑, 혹은 기억 그 자체입니다.
구체화되지 않기에 더욱 보편적이고, 독자마다 자신의 '그대'를 투사하게 됩니다.
“첫눈처럼 낯설지나 않을까”는, 오랜 시간이 만든 관계의 어색함을 조용히 묻습니다.
예전엔 가까웠지만, 이제는 서로를 먼 존재로 인식하게 된 그 애틋함이 묻어납니다.

5. “조근조근 / 이른 아침부터 내리는 빗소리는 / 설득력이 있다” – 감각의 전환, 현실의 수용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리는 현재, 그리고 그 빗소리가 화자에게 “설득력”이 있다고 말하는 대목은 이 시의 백미입니다.
즉, 눈을 그리워했지만, 결국 지금 이 땅의 비를 받아들이게 되는 태도—
이는 이주민의 운명 수용, 삶의 터전 바꾸기, 그리고 이방인에서 정주인으로의 내면적 이행을 뜻합니다.

● 총평
〈첫눈〉은 한 송이 눈도 내리지 않는 남반구의 땅에서,
고향에 내린 첫눈 소식 하나에 마음 한구석이 젖어드는 중년의 서정시입니다.

눈이 낯설어졌다는 말은, 고향과 익숙함이 멀어졌음을 뜻하고,
빗소리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는 말은, 이제는 그 낯선 땅의 풍경도 내 삶임을 인정한다는 고백입니다.

이 시는 해외에 오래 머문 디아스포라적 존재,
혹은 삶의 자리와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든 이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香湖김진수님의 댓글

profile_image 香湖김진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동백도 꽃인데 낯설기야 하겠습니까
다만 오래가는 꽃이 아니라서 조금은 아쉽지요
오래 머물러주면 좋을텐데......
복 많이 받으시고 내내 강건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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