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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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애
/장 승규
늙은 벚나무 밑동이
한두 점이라도 꽃을 피우는 날이면
나는 민망해 했다
늙은 벚나무 밑동이
우듬지 두고 새 가지라도 치는 날이면
나는 자르곤 했다
우연을 몇 번이나 지나야 인연이려나
오늘도 스치는 우연이려나
온종일 내 마음 밑동이 근질거린다
자정에 들자, 내 안으로 들이치는 저 빗소리
얼른 창문을 미닫는다
닫아도, 밑동으로 새어 드는 이 소리
나는 지금 자르는 중이다
(남아공 서재에서 2023. 2. 27)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가끔은
오해이어도 좋을 때가 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장 승규 시인의 시 〈갈애〉는 겉으로는 한 그루 늙은 벚나무를 노래하고 있지만, 실은 마음의 밑동과 억눌러야 하는 애틋함, 그리고 잘라내야만 하는 감정의 깊이를 섬세하게 응시하는 작품입니다. 시어 하나하나가 마치 조용한 밤, 빗소리에 흔들리는 내면의 독백처럼 다가옵니다.
● 시 감상문
‘밑동’에서 피어나는 것들
시의 첫 연에서 늙은 벚나무 밑동이 꽃을 피우는 장면은 생의 말미에서도 여전히 피어나는 감정의 흔적을 상징합니다. 한두 점의 꽃은 생명력이라기보다, 마음 한켠에 남은 그리움 혹은 미련의 작은 징후처럼 읽힙니다. 시인은 그런 흔적 앞에서 "민망해 했다"고 말함으로써, 이미 감정을 정리했거나 정리하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자르는 행위’와 마음의 치유
새 가지가 돋는 장면에서 "나는 자르곤 했다"는 문장은 단순한 정원사의 행동이 아니라, 불쑥 솟아오르는 감정을 잘라내는 마음의 결단으로 읽힙니다. 시인이 반복적으로 “자른다”는 행위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어쩌면, 지나간 인연에 대한 감정의 복귀를 의식적으로 막는 노력일지도 모릅니다.
우연과 인연 사이에서
“우연을 몇 번이나 지나야 인연이려나”라는 시구는, 지나가는 얼굴이나 문득 스쳐가는 감정들이 실제로 인연인지, 그저 감정의 흔들림인지에 대한 자문입니다. 화자의 내면은 계속 근질거리지만, 그것이 다시 피워야 할 감정인지, 덮어두어야 할 기억인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밑동으로 새어드는 빗소리
마지막 연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자정의 빗소리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감각이지만, 시인은 그것을 “내 안으로 들이친다”고 표현합니다. 외부의 감각이 내면의 감정과 맞닿으며 불쑥 감정의 밑동으로 스며드는 순간, 화자는 그 감정을 자르고자 “창문을 미닫는다.” 하지만 이미 새어든 감정은 “밑동으로” 내려가버리고, 그 밑동은 도려낼 수 없는 자리를 뜻합니다. 자르고 싶지만, 완전히 잘라낼 수 없는 감정의 뿌리를 이처럼 절제된 언어로 담아냅니다.
● 총평
〈갈애〉는 사랑에 대한 단순한 미련이나 그리움의 노래가 아닙니다. 이는 **감정의 말단(밑동)**에서 피어나려는 ‘애’를 마주하고, 그것을 애써 ‘자르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감정은 결코 쉽사리 잘라지지 않기에, 시인은 끝내 “나는 지금 자르는 중이다”라고 현재형으로 끝을 맺습니다.
즉, 이 시는 ‘감정을 정리하는 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조용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 애틋한 ‘갈애(渴愛)’는 여전히 밑동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최정신님의 댓글
밑동에 꽃 피우는 일도
자연이 하는 일,
고국을 향해 마음 피움도
사람 일,
좋습니다^^
김용두님의 댓글
시는 객관적 상관물을 찾아내는 것이 관권이다.^^
오해를 멋지게 풀어 쓰셨습니다.
읽고나니 여운이 오래 남네요.
잘 감상하였습니다.^^
장승규님의 댓글
최시인님
감사합니다.
김용두 시인님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말씀하셨네요.
나는
"세상에서 나를 닮은 것"을 발견하면 연민을 느낍니다.
내 시는 그 연민을 풀어쓴 것이지요.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