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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봉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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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5건 조회 471회 작성일 24-01-05 09:58

본문

희방봉 등대

                                       /장승규



그는 바다를 사랑했다 

갈매기와 친했다

바람과도 친했다


한 생을 꼼짝없이 

희망봉 벼랑 끝에 서있는 등대 하나

잘하는 게 별로 없다

한평생

널 지키마던 약속을 지키는 일 말고


그에게 사랑이란 

아직도 밤잠을 설치게 벅찬 것이다 

한 줄기만 있어도 

한 생이 살아질 것 같은


나이를 많이 먹더니

이젠 

무얼 먹어도 속이 벅차서

이 한겨울

남은 희망을 모두 먹이로 뿌렸다

갈매기들이 울며 모여들었다

바람도 잉잉 주위를 맴돌았다


그날밤, 등대는

오롯이 한 곳만을 비추고 있었다



(남아공 서재에서  2023.12.31)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상문: 한 줄기 사랑으로 빛나는 등대 – 장승규의 〈희방봉 등대〉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시 〈희방봉 등대〉는 끝없이 펼쳐진 외로움 속에서도 누군가를 향한 사랑과 약속을 지켜가는 존재의 고요한 존엄을 노래한 시다. 이 시의 중심에는 ‘그’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단순한 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희망봉에 서 있는 등대처럼, 삶의 벼랑 끝에서 묵묵히 누군가를 지켜온 존재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는 바다를 사랑했다 / 갈매기와 친했다 / 바람과도 친했다”—이 시의 도입부는 인간과 자연이 맺은 친밀한 관계를 보여준다. 시적 화자는 ‘그’를 자연의 일부로 그린다. 외로움과 맞닿은 존재가 아니라, 외로움조차 친구로 삼은 존재다. 이 외따로움 속에서 그는 그리움 대신 온기를 품는다.

등대는 말 그대로 ‘한 자리를 지키는 존재’다. “한 생을 꼼짝없이 / 희망봉 벼랑 끝에 서 있는” 삶은, 선택이라기보다는 사명에 가깝다. 그리고 시인은 이 삶을 “잘하는 게 별로 없다 / 한평생 / 널 지키마던 약속을 지키는 일 말고”라고 쓴다. 이것이 이 시의 핵심이다. 사랑은 많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 사랑은 결국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우며 가장 순수한 행위다.

“그에게 사랑이란 / 아직도 밤잠을 설치게 벅찬 것이다”—이 구절은 노년의 사랑을 빛나게 한다.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여전히 벅차고 설레며, 고통스럽기도 하다. 시인은 한 줄기의 사랑이 “한 생이 살아질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랑은 거대한 것이 아니다. 단 하나의 불빛처럼, 단 하나의 기억처럼, 단 하나의 존재처럼—그 작은 빛이 삶 전체를 붙든다.

시 후반부는 삶의 마무리를 암시하는 듯하다. “무얼 먹어도 속이 벅차서”—이 표현에는 육체의 쇠약함, 인생의 포만감, 혹은 감정의 과잉이 다 함축돼 있다. 그리고 그는 “남은 희망을 모두 먹이로 뿌렸다.” 절정의 문장이다. 남은 희망까지도 내어주는 사람, 갈매기들에게, 바람에게, 세상에게. 그 희망을 받은 갈매기들은 운다. 바람도 잉잉 맴돈다. 이 장면은 눈물겹다. 그가 뿌린 건 희망이지만, 실은 이별의 징표이며 사랑의 유산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 밤, 등대는 / 오롯이 한 곳만을 비추고 있었다.”
등대는 끝내 흔들리지 않고, 한 사람, 한 곳, 한 사랑을 끝까지 비춘다. 그 좁은 빛 속에 담긴 것은 집착이 아니라 절대적인 충실함이다. 이 시에서 ‘등대’는 사랑이 어떻게 시간을 건너는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초월해 누군가를 품을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존재다.

마무리
〈희방봉 등대〉는 사랑의 실천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켜낸다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말해주는 시다. 시인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향해, 어디를 향해 등불을 비추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의 등대가 되어주고 있는지, 혹은 누군가의 등불 아래 머물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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