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파는 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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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파는 개
이명윤
개가 땅을 파고 있다
궁둥이를 하늘 높이 전투적으로 세우고
주둥이를 땅속 깊이 묻고 있다
점점 맹렬한 기세로 땅을 갈라치는 앞발,
밥 먹자고 불러도 돌아보질 않고
냉큼 다가가 궁둥이를 딱, 딱, 때려도
막무가내다
요지부동이다
호기심은 생쥐가 후다닥 숨어 버린
사소한 구멍에서 출발했지만
마당 깊이 묻어둔 지난겨울과
비밀과 욕망의 내음이 모두 화들짝
놀란, 흙이 되어 춤추고 있다
쏟아지는 햇살을 가르며 펑펑
황홀하게 흩날리고 있다
절박한 궁둥이 위에 철석철석 빛나는
당당하고 힘찬 꼬리,
물러서지 않는 저 거룩한 자세와
치열한 구멍의 확장을 보며
나는 슬그머니 웃는 얼굴로
어느 혁명가의 낭만을 떠올린다
어느 시인의 집념을 생각한다
질문
누더기 개는 왜 누더기가 되었을까
질문은 종종 길가에 무방비로 피어 있다
누더기에 놀란 가슴들
일제히 브레이크를 밟고
지그재그로 멈추어버린 오후
꼬리를 흔들며 눈망울을 굴리며
위험을 배우지 못한 아이처럼
누더기가 따라올 때, 우리는
천천히 구르는 바퀴처럼
슬픈 눈을 얻었다
너무 오래 아팠거나 갑자기
키가 자라 버렸을까
이것은 누더기처럼
누덕누덕 해어진 질문
멈춰 설 듯 말 듯 주저하는
낯선 행성을 보며
도로 한복판에 납작 엎드린
그림자가 꼬리 친다
어느 날 문득
쓰레기처럼 투기된 계절이
너덜너덜 무거운 옷을 걸친
미련이 꼬리 친다
온 힘이 다 빠지고 가까스로
꼬리만 남은 질문이
털썩, 털썩, 자꾸만
반갑게 꼬리 친다
-계간 <신생> 2025년 여름호,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누더기 개는 왜 누더기가 되었을까
투기된 계절이,
온 힘이 다 빠지고 가까스로
꼬리만 남은 질문이,
내게도
꼬리를 친다.
임기정님의 댓글
어머나
역시나
맛난 시 읽는
땅을 파는 개의 집요함처럼
저 역시 평범한 시라도 썼으면 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서피랑님의 댓글
졸시로 도배한 거 같아, 두 편만 남겨둡니다
장승규시인님, 임기정시인님, 늘 따순 댓글
감사합니다^^;;
건강한 여름 보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