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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이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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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07회 작성일 25-02-24 18:04

본문

 

     이명우

 


종량제 봉투의 생이란

배가 부를 때까지 긴긴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잘 보이지 않을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다.

그는 온통 입뿐인 속을 훤히 벌리고

쓰레기들을 먹어 치운다.

 

덥석덥석 받아먹던 그는 때론 너무 많이 먹어서

옆구리가 터지고

배가 터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어떤 반항도 하지 않는다.

 

그의 일과는 온통 쓸모없는 것들을 먹는 것이다.

그의 입에 한번 들어간 것들은 대부분 다시 나오지 않는다.

가끔 옆구리가 터져서 흘러나오는 것들은 있지만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에게 슬픈 일이 있거나 말거나

그것은 그가 관계할 일이 아니다.

 

그는 다만 입만 갖고 태어났으므로

해서 얼굴이 없으므로

이면도 체면도 없다.

 

덥석덥석

받아먹다가 봉지째 버려지는 것

그 장렬한 한 봉지의 죽음이 되는 것이

그의 직업이다.

 

이명우 시집, 관리소장(파란, 2025)


 

이명우.jpg

 

경북 영양 출생

201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달동네 아코디언 관리소장 


===========

내 급여는 작년과 똑같다

[관리소장]은 이명우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으로, 「지출명세서」 「관리소장」 「이티」 등 52편이 실려 있다.

이명우 시인은 경상북도 영양에서 태어났고, 201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달동네 아코디언] [관리소장]을 썼다.

최근 인간이라는 범주와 영역에 대한 질문을 통해 그것을 벗어난 세계의 모습을 새롭게 재구성해 보기 위한 진지한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시노하라 마사타케는 이 같은 질문들에 대해 정리를 하면서 진실한 세계에 이르기 위한 중요한 단서로 모든 지나간 것들이 남긴 ‘흔적’을 강조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소멸의 운명을 피할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으며 바로 그 흔적이야말로 확실성의 유일한 표식이라는 것이다. 시 「각질의 힘」을 비롯해서 이명우 시인의 시집 [관리소장]을 통해 우리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이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실제의 공간이지만 오히려 어떤 흔적도 허용하지 않는 도시의 ‘관리소장’으로 살아가는 시인이 역설적으로 이 같은 ‘흔적’에 주목하는 것은 결국 ‘도시인’이라는 존재의 조건들에 대한 질문과 마찬가지이다.
도시의 기능이 문제없이 돌아가도록 만들지만 정작 그 뒤에 가려져 있던 ‘관리소장’으로서 이명우 시인이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핵심은 바로 도시가 거부한 것들의 흔적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직장인으로서의 그는 다른 사람들의 “욕설을 넙죽넙죽 받아들”이거나(「욕설의 한 연구」), “변덕이 심한 날씨”처럼 시시때때로 바뀌는 “상사의 지시 사항”을 말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변곡점」). 수직적인 구조와 계약으로 맺어진 종속 관계를 통해서만이 자본은 축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생활인의 삶 가운데에서도 그는 자신을 포함해 도시의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에 끊임없이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중앙박물관”에 있는 유물들처럼 현실에서의 쓸모는 이미 멈춘 채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만나게 된다(「각자 나이를 먹지 않는다」). 역사적인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 유물들은 현실에서라면 결국 도시가 지정해 둔 공간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갇혀 있을 뿐이다. 시인은 바로 이와 같은 것들에 시선을 던짐으로써 그 안에 켜켜이 쌓여 있던 삶의 흔적들을 복원하고 있는 중이다. 쓸모를 다하고 버려진 것들에 새겨져 있는 흔적을 더듬어 가는 시인은 도시의 소음 뒤로 감추어진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다니”는 것 또한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잠복기」). 「누가 저렇게 많은 소리를 허공에 매달아 놓았던가」나 「공황장애」, 「물의 길」 등 시집 [관리소장]에서 ‘소리’에 주목하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명우 시인을 따라 도시의 모습 뒤에 감추어진 흔적들을 따라가 보는 일이 매력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도시의 길을 따르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것은 무엇보다도 목표를 거부하며 에둘러 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흔적을 남기며 살아갔던 사람들의 작은 숨결까지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일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는 이미 늦은 채, 도시의 길에서는 벗어난 채로 말이다. (이상 남승원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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