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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하 시 <동백숲에서>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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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9회 작성일 26-05-10 13:07

본문

숲에서 4

 

     김완하

 

 

1 

칠흑 같은 오랏줄의 밤

꽁꽁 어둠이 와서

동백꽃 한 잎 피어납니다

천 길 벼랑으로 밀리다

최후의 순간,

목숨을 던져서

가까스로 꽃 한 송이 터집니다

 

 

2 

그대는 아는가

이 한밤 저 대홍사

산도 물도 한몸 되어 흐르나니

낮이 가고, 풀잎들 몸을 숙이면

그저 어둠일 뿐이다

가쁜 숨결

깡마른 그림자 끌고와

몇 줌 불빛을 쓰고 서 있나니

동백 한 잎 가슴에 묻고

어둠밖에 홀로

꽃잎 지는 소릴 듣는다

 

 

3 

간밤 술렁대더니

동백꽃 무더기로 쏟아내며

아침은 옵니다

이 봄 사월, 오월

아픈 기억 속에 모두 주어도

꽃은 흐드러집니다

빛나는 아침,

꽃 한 송이 져서

동백숲은 불타 오릅니다

갇혀 있던 새들 날아와

꽃잎에 녹슨 부리를 닦습니다

 

 

4 

우리 가슴 향해

활시위 굳세게 당기고

꺾일수록,

시위 더 팽팽히 차오르는가

어둠 한줌과 제 몸을 바꾸며

새벽으로 기어가가는 풀잎들

남기고 간 발자국 타고

강물은 돌아오리니

그 물길 끝에서 동백꽃 열두 송이

투욱 툭, 벌지 않던가

 

 

5 

떨어진 꽃잎만이

아직 숨쉬고 있습니다

그대 향해

온몸으로 열고자 한 나의 물길

여기 와 잠시 멈추어 둡니다

단단한 밤 오기 전

죽음으로 가는 꽃잎 하나

빛을 남기고 있습니다

꽃잎을 밟으며

왔던 길 다시 걸어갑니다

 

 

 

· 4

 

 

나의 별은 내가 볼 수 없구나

항시 나의 뒤편에서

나의 길을 비춰주는 그대여,

 

고개 돌려 그를 보려 하여도

끝내 이를 수 없는 깊이

일생 동안 깨어 등을 밝혀도

하늘 구석구석 헤쳐 보아도

나는 바라볼 수가 없구나

 

우리가 삼천 번 더 눈떠 보아도

잠시, 희미한 그림자에 싸여

그을린 등피 아래 고개를 묻는 사이

이 세상 가장 먼 거리를 질러가는 빛이여

 

어느새 아침은 닿고,

진실로 나의 별은 나의 눈으로

볼 수가 없구나

 

 

 

 

 

앞으로만 달려가는

너를 보면 두렵다

오직, 일방통행일 뿐

물러서는 법이 없구나

돌아가는 길이 없구나

 

얼마나 완벽한가

지나온 길은 이미 지워지고

다만 앞이 있을 뿐

그러나, 앞도 이제 뒤가 되는 것을

과거가 없는 너는

추억이 없는 너는, 그 얼마나

행복한가

 

당당한 네 모습 보여 주고 싶겠지만

훈장 번쩍이고 싶겠지만

우리 모두는 네게서

구겨진 뒷모습만 보는구나

헐렁한 바지, 기운 어깨

뒤축이 닳은 구두만 보는구나

 

 

 

백마강에서

 

 

저문 강에 비가 내린다

강심 깊이 귀를 묻으면

잠들지 못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강물에 번지는 신음소리따라

젖은 풀잎 깨어난다

 

그날 황산벌에 끓어오르던 함성

북소리 목놓아 울고

쫓겨온 장수 몇이 피를 헹구고 떠난 후

빗물이 쌓여,

죽음을 끌어안고

모래알은 천만 번 깨어나고 있다

 

다짐하고 다짐해 봐도

억누를 수 없는 힘을 어이하랴

안으로 뜨겁게 흐느끼는 강 자락

장수의 칼날이 끊어 낸 몇 둥치 어둠이여

거센 물결은 거듭 일어서고

우리가 살아 있음으로 더욱 슬퍼지는 것을

, 어이하랴

 

비는 헐벗은 몸짓으로 부서져

강물에 몸을 섞는데

우리 이대로 서서 무엇이 될까

천둥소리에 놀라

재앵 쟁 강줄기 몸을 뒤틀고

강 울음은 들판을 적신다



 

하회강에 가서

 

 

하회강에 밤이 깊다

모래에 그림자 파묻고

무거운 밤을 지고 섰다

열렸던 길들은 돌아가 어둠 속으로 눕고

샛길에 닿기를 거부한다

강물 소리에 귀를 담그고

하얗게 뼈를 비우는 나무들

먼 산들 끝내 제 모습 지우지 못한다

 

어둠 가르며 뻗는 손

장삼 자락 가득 고인 그리움이여

하회 강물 천년 두고 흘러

굽은 물줄기 하나 꺾지 못하고

굽은 허리 더 휘어 돈다고

자욱한 개구리 울음뿐이다

강 질러온 빛 부용대에 머리 부딪혀

산산이 꽃되어 내리는지

강물은 소나무숲에 와

천둥소리 내며 뒤채어 흐른다

억센 어깻짓에

물러서는 몇 겹의 밤

하회 아이들이 땅에 그린 탈들이

눈뜨고 강으로 나아온다

녹슨 잠 한 짐씩 강에 부린다

불빛 화살에 이마를 씻고

어우러지는 한판 춤,

짙은 안개를 차고 오르는 빛이

어둠을 가르고 간다

 

김완하 시집, 길은 마을에 닿는다(천년의시작,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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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경기도 안성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1987년 《문학사상 》 등단
시집으로 『길은 마을에 닿는다』  『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 』
『네가 밟고 가는 바다』』『허공이 키우는 나무』 『절정』우물

비평집 『한국 현대시의 지평과 심층』 『중부의 시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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