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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나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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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99회 작성일 24-12-25 20:30

본문

메멘토 모리

=나금숙

 

 

죄책감이나 그리움이 약점이 될 수도 있어서

쫓기는 마음은 동굴 안에서 쉰다

빛 조각처럼 내가 베어낸 당신의 옷자락과

내가 들고 온 당신의 물병 하나

유리창에 쓴 안녕

맹그로브 우거진 숲을 지나가며 굽어본 물속에

그의 푸른 얼굴 꼭 감은 눈

나와 당신의 약점들을

 

새벽이면 문설주에 헝겊을 꼬아 매달곤 했다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며

그림자를 넓혔다

그 동굴에서 그 바닷가 숲에서

내가 보고 온 푸른 이마가

거짓 잠을 깨운다

사랑도 죽음도 순간의 선택,

이름만 왕이라는 욕망도 미움도 거기서 잠든다

언제 깰지 모르는 얕은 잠을

 

   시작시인선 0506 나금숙 시집 사과나무 아래서 그대는 나를 깨웠네 26p

 

   얼띤 드립 한 잔

    시제 메멘토 모리는 철학적인 말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의 라틴어 경구다. 인생의 무상함과 오만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경고가 담겨 있다. 시에 대한 죄책감이나 그리움은 죽음이 이르기까지 끌고 넘어지는 인연이다. 혹여 나 때문에 더 좋은 삶의 기회를 놓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겠다. 삶을 부여받고 그 삶을 지탱할 수 있게 도움까지 받은 자식이다. 나와 같은 유전자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죄책감이 앞서고 그런 점이 없길 내심 고대하며 기도까지 하지만 자식은 고스란히 또 닮아 간다. 그래 세상은 늘 변화하고 있으니까 진화는 퇴보도 진보도 아니다. 다만 적응하는 과정이다. 너에게 맞는 환경은 따로 있으니까! 유리창에다가 안녕이라고 쓴다. 맹그로브는 아열대나 열대의 해변이나 하구의 습지에서 자라는 관목이나 교목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조수에 따라 물에 잠기거나 나오기도 한다. 약점과 단점이 있다면 내 모르는 강점과 장점도 있을 것이다. 새벽이면 문설주에 헝겊을 꼬아 매달곤 했다. 새벽은 새로운 환경을 상징한다면 문설주는 문짝을 보조하며 지탱하는 기능을 갖는다. 시의 기능이겠다. 헝겊은 피륙의 조각으로 어떤 희생 같은 것이 보이고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며 그림자를 넓혔다. 네가 너다운 너의 티가 나도록 느티나무 하나가 올곧게 서 있었다는 것. 그 동굴에서 그 바닷가 숲에서 내가 보고 온 푸른 이마가 거짓 잠을 깨운다. 수천 년이 흘러도 바다는 그대로다. 1/2, 1/4, 1/8 유전자의 변이는 분화하고 원 개체는 알아볼 수 없듯이 거짓 잠만 잘 뿐이다. 사랑도 죽음도 순간의 선택, 이름만 왕이라는 욕망도 미움도 거기서 잠든다. 언제 깰지 모르는 얕은 잠을, 시는 하나의 개체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나의 유전자를 지녔다는 것 그것을 이전하는 기능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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