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부르는 은행나무 / 양문규 > 문학 강좌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문학 강좌

  • HOME
  • 문학가 산책
  • 문학 강좌

(관리자 전용)

☞ 舊. 문학강좌

시를 부르는 은행나무 / 양문규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3회 작성일 26-05-16 10:02

본문

시를 부르는 은행나무 
―‘2010 천태산 은행나무 시제’에 부쳐  


                                            양문규



  가을입니다. 흰 구름 둥실둥실 흐르는 하늘 새파랗습니다. 온 산은 울긋불긋 물들었습니다. 강물도 깊어 물소리 새하얗습니다.
  올 가을은 더디 찾아온 것 같습니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길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 가을을 즐길만한 마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그런지도 모릅니다. 이런저런 일들로 동분서주하다 보니 가을을 담을 그릇을 비워두지 못한 탓도 크겠지요. 어느 날 문득 눈앞에 펼쳐진 물봉선과 쑥부쟁이 앞에서 가을이구나, 잠시 바쁜 발걸음을 가다듬고 천태산 옛길 따라 진주폭포 망탑을 지나 천 년 은행나무 곁으로 갑니다.


  꽃은 제 철 따라 자신의 존재를 아름답게 드러냅니다. 그 아름다움은 어떤 작위도 없이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을 닮아 있지요. 나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옛 선조들은 “철 좀 들어라.” 했겠는지요.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며 결실을 찾아야 하는 것을, 욕망을 좇아 브레이크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개인도 이웃도 국가도 종교도 모두 부끄러운 한통속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시가 좋아 시를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문청시절 이맘때쯤이 되면 ‘문학의 밤, 시화전’을 찾아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지요.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을 외며 평생 그리워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도 나름대로 가슴에 새기기도 하였고요. “별하나에 추억(追憶)과/별하나에 사랑과/별하나에 쓸쓸함과/별하나에 동경(憧憬)과/별하나에 시(詩)”(윤동주, 「별헤는 밤」, 『하늘과바람과별과詩』, 정음사, 1980)를 가을의 별 속에 담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길은 언제나 오솔길에 있었습니다. 산길에 있었습니다. 감나무에 있었습니다. 장독대에 있었습니다. 바람 부는 벌판에 있었습니다. 가다가 지치면 쉬면서 물마시고 일어나 또 걸었지요. 빈 주머니 속을 뒤적뒤적하면서 고단한 삶을 원망하기보다 스스로 위안하며 행복한 삶, 그게 시의 길이었습니다.


  천태산 은행나무 곁에 220편의 시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사화집 『시가 부르는 은행나무』(시와에세이, 2010)를 펴냈습니다. 그동안 매년 천 년 은행나무 곁에 시화를 걸고 시제를 지내고 싶었는데 모든 게 여의치 않아 이제야 그 소망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2008년 몇몇 문우와 지인들과 함께 ‘천태산은행나무를사랑하는사람들’을 결성하였는데요. “천태산 은행나무의 고귀한 생명을 내 일처럼 기뻐하고 감사하게 여기며, 나아가 자신과 이웃, 대자연속 뭇 생명의 평화를 지켜내며 가꾸는 것을 소명으로 자연과 생명, 평화의 소리를 듣고자” 뜻을 모으게 되었지요. 지난해 ‘2009 천태산 은행나무 시제(詩祭)’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2010 천태산 은행나무 시제’는 지난해와 달리 ‘시제’ 외 걸개시화전, 사화집 출판기념회, 시낭송, 대금연주, 노래공연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였습니다. ‘걸개시화전 및 사화집’은 전국 시인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하였지요. 시를 보내주고, 제반 행사에 필요한 재화까지 보내주었으니 이 고마움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요. 걸개시화 역시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소박하게 제작하였습니다. 자연과 생명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자 하는 겸허한 마음으로 그 어떤 문양이나 색을 입히지 않은 것이지요. 이 모두가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생명, 평화의 마음입니다.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 되나
   비와 바람과 햇빛을 쥐고
   열심히 별을 닦던 나무
   가을이 되면 별가루가 묻어 순금빛 나무

   나도 별을 닦는 나무가 되고 싶은데
   당신이라는 별을
   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물이 들어
   아름답게 지고 싶은데

   이런 나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불러주면 안 되나
   당신이라는 별을
   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물이 들어
   삶이 지고 싶은 나를
                           ―공광규, 「별 닦는 나무」(『시를 부르는 은행나무』) 중에서




  “별 닦는 나무”가 어디 은행나무뿐이겠습니까. 나무란 나무 모두 “별 닦는 나무”이지요.  그런데 공광규 시인은 은행나무를 불러 “별 닦는 나무”라 호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은행나무와 소중한 인연이 저와 같이 그를 붙들어 매고 있나 봅니다.
  은행나무는 “비와 바람과 햇빛을 쥐고/열심히 별을 닦던 나무/가을이 되면 별가루가 묻어 순금빛 나무”입니다. 시인도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런 열망으로 시인도 종국 “순금빛 나무”가 되어 있네요.
  고생대부터 빙하기를 거쳐 살아남은 은행나무는 질긴 생명력을 자랑합니다. 우리나라도  충북 영동 천태산 은행나무,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충남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 등 천여 년의 세월을 같이하고 있지요.
  은행나무는 나라의 흥망을 비롯한 각기 거처하는 지역의 전설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그 전설은 한마디로 신비함 그 자체라 할 수 있지요. 시인들이 앞 다투어 은행나무를 노래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겠지요. 천태산 은행나무 역시 많은 전설을 지니고 있는데요. 이는 “오랜 세월의 독경소리와 종소리/윤회 거듭한 바람이며 구름, 새와 벌레의 가계사가/저 검푸른 몸속 들고나며 살림을 냈”(이재무, 「그늘에 물들다」 부분)기 때문 아닐까요.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강물을 나눠 마시고
   세상의 채소를 나누어 먹고
   똑같은 해와 달 아래
   똑같은 주름을 만들고 산다는 것이라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의 강가에서 똑같이
   시간의 돌멩이를 던지며 운다는 것이라네
   바람에 나뒹굴다가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나뭇잎이나 쇠똥구리 같은 것으로
   똑같이 흩어지는 것이라네
                   ―문정희, 「사랑해야 하는 이유」(『시가 부르는 은행나무』) 중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자문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천태산 은행나무곁을 서성입니다. 언제나 은행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품만으로 가만히 들려주는 소리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늘 속에 놓인 생명의 소리가 그것입니다.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나누고 베푸는 것이라고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문정희 시인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세상의 강물을 나눠 마시고/세상의 채소를 나누어 먹고/똑같은 해와 달 아래/똑같은 주름을 만들고 산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언제고 어느 때고 “나뭇잎이나 쇠똥구리 같은 것으로/똑같이 흩어지는 것이라”라 노래하고 있지요.  


  천태산 은행나무는 천여 년 물과 바람과 햇빛만으로 생명을 지탱한 채 “가진 것 없이 정정하고/비울 것 없이 고요한”(양문규, 「그늘 속에는」 부분)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잎과 열매는 물론 나뭇가지까지도 송두리째 우리들에게 내려놓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이른 봄 아침부터
   늙은 나무 한 그루가 선 채로 목탁이 된다
   산 하나가 통째로 목탁이 된다
   산마을이 그대로 절간이 된다

   댕기꼬리 붉은 딱따구리가 돌아왔능갑다, 잠 깨느라 나무들 초록 눈 비비고, 잠 덜 깬 이웃 산 이웃 마을도 부스스한 목청으로, 잠결처럼 따라 중얼거린다

   눈과 비, 바람과 구름, 물과 새,…… 그리고 또 빛과 어둠까지
   나무의 언어가 아닌 말을, 나무의 목청으로
   세상 잠을 깨우고 마음을 잠 깨우는
   일곱 박자 이상은 필요가 없는 나무의 말귀를
   나만 못 알아듣는다.
                       ―유안진, 「칠박자로 하는 말」(『시를 부르는 은행나무』 중에서



  나무가 베푸는 삶의 양식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어찌 인간의 언어로 그 너른 품을 다 잴 수 있겠는지요. 사계절 철 따라 시시각각 내려주는 묵언의 양식, 천태산 아름드리 천 년 은행나무는 그래서 우리 삶의 객관적 실체입니다.
  며칠 전 갑자기 밀어닥친 가을 한파에 천태산 은행나무는 은행잎이 채 물들기도 전 무성했던 잎을 한꺼번에 내려놓았습니다. 빗물 머금고 선연히 물들기 시작했는데 이른 아침 우수수 떨어진 은행잎 무더기를 보고는 아찔했습니다. ‘천태산 은행나무 시제’를 한 열흘 앞두고 있는데 은행알만 간당간당 붙들고 있는 은행나무가 너무나도 애처로웠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노오란 은행잎 절경을 보러 올 많은 시인들 생각을 하니 또 가슴이 짠했습니다. 그러나 곧 어리석은 생각을 접었습니다. “눈과 비, 바람과 구름, 물과 새,…… 그리고 또 빛과 어둠까지/나무의 언어가 아닌 말을, 나무의 목청으로/세상 잠을 깨우고 마음을 잠 깨우는” 그 말귀를 어찌 다 들을 수 있겠는지요.


  “댕기꼬리 붉은 딱따구리가 돌아왔능갑다, 잠 깨느라 나무들 초록 눈 비비고, 잠 덜 깬 이웃 산 이웃 마을도 부스스한 목청으로, 잠결처럼 따라 중얼거”리는 천태산 은행나무, 모든 걸 내려놓고 묵상에 든 천태산 은행나무가 지금 시를 부르고 있습니다. 아니, 시를 부르는 걸 넘어 뭇 시인들에게 시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천 년 세월을 건너온 우람한 풍채와 황금빛 이파리 절경을 넘어 은행알 하나, 가지 하나가 있는 그대로 시입니다. 비바람과 눈보라 햇빛을 걸러내며 서 있는 그대로가 절창입니다.


  가을입니다. 온 산이 새빨갛습니다. 천태산 은행나무 “순금빛 나무”가 새빨간 가을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계간 시에2010년 가을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239건 1 페이지
문학 강좌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열람중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 05-16
238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 05-16
237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 05-16
236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 05-16
235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 05-16
234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 05-16
233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82 03-21
232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39 06-27
231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63 06-27
230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87 06-27
229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87 06-27
228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85 06-27
227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68 12-05
226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87 12-05
225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345 04-05
224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46 03-28
223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661 03-25
22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187 03-24
22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11 03-23
220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95 03-22
219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18 03-21
218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39 03-18
217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08 03-17
216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63 03-16
215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67 03-15
214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241 03-14
213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14 03-10
21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099 03-09
21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517 03-08
210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398 03-07
209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16 03-04
208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507 03-03
207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62 03-02
206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559 02-29
205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08 02-26
204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06 02-25
203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556 02-24
20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806 02-23
20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62 02-22
200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38 02-19
199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244 02-18
198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547 02-17
197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582 02-16
196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094 02-15
195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421 02-12
194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70 02-11
193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19 02-05
19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508 02-04
19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047 02-03
190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660 02-02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