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리소설]소용돌이 치다[2]
페이지 정보
작성자본문
종로경찰서 강력계 사무실의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수사 서류를 검토 중이던 선아는 눈은 서류에 고정한 채 손을 뻗어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여긴 용가리백정 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 강력팀입니다.”
“이름이?”
감정이 없고 약간 어눌한 남자 목소리였다.
“누구신데, 형사 이름을 물어요?”
“......혹시 조선아형사?”
선아는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자 순간 긴장했다.
“그러는 댁은요?”
“하하하......?”
남자가 기분 나쁘게 웃었다.
“알 거 없고....배은지야!”
“배은지라뇨?”
“계주 다음 주자가? 하하하......”
전화가 달칵하고 끊어졌다.
선아는 한동안 멍하니 빈 수화기만 바라보았다. 다짜고짜 전화해서 이름을 물어보고 생소한 이름을 언급하고 일방적으로 끊어 버렸다. 선아는 무엇에 홀린 듯 하다가 순간 섬광처럼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계주? 다음 주자....?
선아는 강팀장에게 건의드려 회의를 소집하게 만들었다.
강력계 팀원 일곱명이 원형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둥그럽게 앉았다.
침묵이 이어진 가운데 통화 내용이 녹음된 파일을 청취했다. 청취가 끝나자 강팀장이 긴호홉을 내쉬고 나서 말했다.
“자, 한마디씩 해! 누구 전화일 것 같아.”
“도저히 유추해 낼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다음 주자, 이것에 번뜩 떠오르는 놈이 있어요.”
막내 형사가 의견을 개진했다.
“그놈이 목소리를 드러냈어요. 용가리백정!”
선아가 말했다.
“그놈이 다음 희생자를 통보한 것 같아요. 배은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고. 그래서 간암협회에서 가져온 블루스카이 명단을 조형사와 훑어보았어. 배은지, 그녀 이름이 떡 하고 있었어.”
강팀장이 엄격한 어조로 말했다.
“배은지, 나이 29세, 키 백팔오센티미터...발병 이전에 국가대표 농구 선수였어요. 아직 미혼이고 준수한 외모에 출중한 얼굴이래.”
강팀장이 말을 이었다.
“당장 배은지 주소지로 출동하자고!”
강팀장이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남자는 3평 남짓한 욕조를 내려다보았다.
욕조 안은 검붉은 피로 범벅이었다. 남자는 손을 뻗어 정강이뼈를 건져 올렸다. 그것을 검은 봉지에 담았다. 욕조 안은 불록한 봉지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가 여성을 살해하고 마트에서 사 온 것은 믹서기와 세정제, 솔과 톱이었다. 살은 믹서기로 갈아 변기에 버렸고 뼈는 톱으로 잘랐다. 그로부터 30분가량이 흘렀다. 남자는 봉지들을 여행용 가방에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다. 그것을 가방 두 개에 나눠 담고 거실 한켠에 두었다.
남자의 여자는 언제나처럼 켜 놓은 텔레비전을 향한 앉아 있었다. 남자는 배은지의 얼굴과 머리채를 벗겨 놓았었다. 해골같은 여자의 얼굴에 그것을 쒸었다.
“나의 팅거벨. 오늘 당신은 동지였던 배은지의 얼굴로 바뀐 거야. 추렁추렁한 머리, 살아 있을 때 탱탱했던 얼굴. 어때? 마음에 들어?”
“어머나, 내가 다시 볼에 살이 붙고 윤기나는 긴머리로 바뀌었구나. 고마워요.”
여자는 씨익 웃는 것 같았다.
“사랑해요, 팅거벨!”
남자는 배은지의 입술에 살포시 입술을 맞추었다. 그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장안동 한 빌라앞에 서너 대의 차량이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함께 끽 하고 멈추었다. 수사본부 형사들이 급히 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배은지의 주소를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건물 앞으로 걸어갔다. 강팀장이 손짓으로 주변을 둘러볼 형사와 건물 입구를 지킬 형사를 나누었다. 혹시 범인이 침입했거나 어떤 단서거리라도 찾을 요량이었다.
만반에 준비가 끝나자 강팀장과 선아가 빌라 건물 계단을 빏았다. 은지네는 3층에 거주하고 있었다. 두 형사가 302호 앞으로 다가갔다.
강팀장이 눈짓으로 노크를 할 것을 선아에게 요청했다. 강팀장은 권총을 꺼내 들었고 은지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똑똑 노크했다.
“누구세요?”
약간 지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아무 일 없는 거죠?
선아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경찰인가요?“
”예....배은지 씨 계세요?“
안에서 밖으로 현관문이 열렸다. 초로의 아주머니 한 분이 놀람과 기대감을 품은 눈빛으로 서 있었다.
권총을 거두며 강팀장이 말했다.
”우린 형삽니다. 배은지 씨가 안에 있나요?“
금세 아주머니 눈빛이 젖어 들었다.
”우리 딸은 집에 없어요. 그거 모르고 왔나요? 집에 들어오지 않은지가 삼일 째예요. 무슨 일일까요. 실종 신고를 했는데 무소식이라....“
”따님께서 가출할 이유가 있나요?“
강팀장이 핸드폰 메모장을 켰다.
”착한 애예요. 큰 아픔을 겪었지만 본래의 컨디션으로 돌아가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에요. 그런 애가 가출할 이유가 전혀 없죠.“
”큰 아픔이라뇨?“
”간암을 앓았어요. 수술해서 완치되었지만 많은 것을 잃었어요,“
”남자친구가 있어요?“
”없어요. 있었는데, 암에 걸리자 떠났죠. 매정한 녀석이죠.“
”참 나쁜 녀석이군요. 완치 후에 연락 같은 거 온 적이 있나요?“
”잘,,,,모르겠지만 은지 전화 통화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재회하자고 그 녀석이 매달리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은지가 완강히 거부하는 것 같았어요.“
”녀석의 주소나 전화번호 아세요?“
”예, 알아요....필요한가요?“
강팀장이 그렇다고 하자 아주머니가 방으로 들어가서 번호가 적힌 명함을 가져왔다.
‘우동혁, 동혁물산 대표’
우동혁이란 작자는 무역 일을 하는 회사 대표였다. 그가 재회를 희망했고 은지는 단호히 거절했다. 뭔가 쎄 하는 것이 있었다. 이번 연쇄살인에는 남자친구가 다들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명이라도 희생자들과 연결되는 인연은 없었다. 그렇지만 모방 범죄를 활용해 그들의 여자친구를 살해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우동혁, 그를 만나 봐야 할 것 같았다.
강팀장과 선아는 아주머니와 다른 몇 가지 질문을 던진 후 그 빌라를 떠났다.
여섯 번 채 희생자가 발견된 곳은 첫 번째 희생자가 발견된 불암산이었다. 첫 번째 희생자가 버려진 곳에서 오십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왜 범인은 첫 사체를 유기한 불암산에 여섯 번째 희생자의 사채를 유기한 것일까.
선아는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처음으로 돌아가다!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이번에 발견된 사체는 배은지였다. 선아가 은지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띠리릭 전화가 왔었었다.
실종된 지 사흘만에 사체로 발견된 배은지, 그녀는 농구선수로 복귀하기를 희망했고 전남친이 다시 만나자고 집착을 보이고 있는 여성이었다.
사체의 지문을 떠서 신원을 확인했고, 이번에도 토막살인이었다. 폴리스 라인이 처진 안쪽에 팔다리와 머리가 없는 은지의 사체는 언제나처럼 간이 절제되어 사라져 있었다.
강팀장과 선아는 주변을 수색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우동혁을 만나기 위해 차를 몰았다. 그에게 확인할 질문이 생겨 난 것이다.
우동혁은 은지가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더니 아연실색한 표정이었다. 그는 다방 여종업원이 갖다 준 커피 대신 물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끝내 그렇게 됐군요.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너무나 사랑했던 여자이거든요.“
그의 목소리엔 물기가 깃든 것 같았다.
”왜 그녀가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하세요?“
강팀장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특별히 원한 살 사람도 없을 텐데.“
”그녀가 혹시 불암산과 무슨 연관이 있나요?“
”불암산이요? 은지는 등산을 잘 다녔어요. 뭐 다섯 개의 산을 정복할 거라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그 중에서 불암산이 제일 좋다고 하더군요. 다섯 개의 산 중에서 첫 번째 산이라면서요.“
은지는 불암산을 좋아했다? 그리고 등산을 좋아했다? 첫 번째 산 불암산. 어쩌면 범인은 은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작자일 공산이 컸다. 그녀의 주변을 철저히 탐문해 볼 필요성을 강팀장과 은지는 느꼈다.
”참 배은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은지요? 좋은 사람이죠. 맹열한 여성이기도 하고요. 그녀는 올림픽에 참가했던 농구선수였어요. 비록 병이 나 은퇴하긴 했어도요...“
형사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문제는 은지가 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라는 것이다. 선아는 버뜩 떠오른 것이 있었다. 밑도 끝도 없이 떠올랐던 그거? 올림픽기! 혹시 희생자들이 올림픽과 깊은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다섯 개의 산을 종주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혹시 다섯명의 여자들이 그 산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선아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알아봐야 한다. 희생자들이 올림픽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그들은 우동혁과 헤어진 후 수사본부로 돌아왔다. 화이트보드에 백정에게 희생된 여섯명의 여성들이 희생된 순서대로 나란히 사진이 붙었다. 형사들을 향해 지휘봉을 들고 강팀장이 섰다.
”이 여섯 명의 피해자들은 모두 운동선수였어. 알아 본 결과 모두 올림픽에 참가했던 사람들이야. 이들은 또 다같이 간암 환자였어. 공통된 것은 이것 뿐만이 아니야. 모두 산을 좋아하고 간암을 이겨낸 불굴의 사람들이야. 과연 이들은 무엇을 두고 경쟁했을까. 아니면 다 친구였을까. 뭣 때문에 다같이 간암 말기 환자였을까?“
”제가 알아봤는데요, 과거 전남 진도 등에서 발생한 사례들처럼 특정 지역 내 c형 간염의 집단 감염이 혈액이나 체액으로 옮긴다고 합니다. “
메부리코를 한 정형사가 말했다.
”그럼 그녀들이 c형 간염이라는 거야?“
”매개체는 그녀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뭔가가 아닐까요?“
”예를 들면?
강팀장이 정형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그들이 어디선가 집단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듭니다.”
첨부파일
- 소용돌이 치다 2편.hwpx (60.6K) 2회 다운로드 | DATE : 2026-04-20 16:33:3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