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란에 서다 / 이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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樓蘭에 서다
이정원
단산한 여자처럼 누워있는 새만금 개펄
퇴박맞고 나뒹구는 몸뚱이 여기저기 마른버짐 피우고 있다
죽은 농게 눈에 화석처럼 박힌 갯내, 무딘 게걸음으로 걸어와 코 끝 지분거리는데
잘못 왔다, 길을 잘못 들었어,
빈 부리 치켜든 청둥오리가 개펄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뻘 속에 묻혀 살다 뻘이 되어버린 아낙들 속 빈 백합을 캐고 있다 끊임없이 헛손질만 하고 있다
갈고리를 물고 늘어지는 뻘의 입 옥니처럼 꼭 다물고 놓지 않는다 무언가 단단히 하소연할 게 있다는 눈치다
먼 서역이 아니더라도, 어디든 누란은 있다
소실된 왕국의 유적처럼 쓸쓸한 패총만 남은 마른 개펄 위
자멸하듯, 석양이
아낙들 등에 칼을 꽂는다
―이정원 시집 『꽃의 복화술』 (천년의시작, 2014)

2002년〈불교신문〉신춘문예
2005년 《시작》등단
2009년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시집 『내 영혼 21그램』『꽃의 복화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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