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비나무 / 안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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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나무
안상학
마음이 아프면 죽고 싶다가도
몸이 따라 아프면 살고 싶었습니다
마음을 단단하게 하려면 겨울이 길어야겠습니다
고통을 새기려면 거센 바람이 오래 흔들려야 했습니다
슬픔을 아로새기려면 거친 눈보라가 제격이겠습니다
슬픔의 소리가 노랫말을 얻을 때까지
고통의 소리가 선율을 얻을 때까지
마음에 지지 않으려면 몸에 울음소리를 새겨야겠습니다
몸에 지지 않으려면 마음에 신음소리를 새겨야겠습니다
길고 긴 밤의 시간을 건너고 건너서
수없이 많은 겨울의 시간을 지나고 지나서
거짓말같이 봄이 오고 믿을 수 없는 여름이 오고
도둑같이, 다시 겨울을 부르는 가을이 오면
나는 내 모든 것을 내던지겠습니다
누군가 내 몸을 잘라서 고통을 보자 하면 선율을 내놓겠습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쪼아서 슬픔을 보자 하면 노래를 내놓겠습니다
아픈 마음의 소리를 아픈 몸이 노래합니다
아픈 몸의 소리를 아픈 마음이 노래합니다
마음이 못내 아파서 죽을 생각을 하다가도
몸이 못내 아파서 살 마음을 내겠습니다
―계간 《창작과비평》 2022년 여름호

1962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중앙일보>신춘문예 당선
제15회 고산문학대상 수상
시집『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
『아배 생각』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시의 꽃말을 읽다』 등
인물평전 『권종대-통일걷이를 꿈꾼 농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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