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그치고 / 한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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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그치고
한영옥
머리끝까지 저릿한 걸 보니
많이 참은 것이다
자리 털고 일어서며
방석 제자리에 던져놓고
미닫이문 스르륵 열고 나가며
그래도 한 번 더 주춤거리다
가지런하게 문 닫아주고
나가서 한참을 헤매다, 걷다가
찻집 창가에서 컵을 오래 만지다
마음의 네 귀퉁이 단단히 잡아
마음을 착착 잡고 마는 사람들
오늘도 여기저기 쿡쿡 박혀 있으니
나도 한자리 배정받은 것이니
차 한 잔 비우고 사람 몇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서면 되는 것
내리는 눈발이 포근하리라는
근거 없는 바람 이젠 뚝 그치고서.
―한영옥 시집 『슬픔이 오시겠다는 전갈』(문학동네, 2018)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적극적 마술의 노래』 『처음을 위한 춤』 『안개편지』
『비천한 빠름이여』 『아늑한 얼굴』 『다시 하얗게』『슬픔이 오시겠다는 전갈』 등
1997년 한국예술비평가상, 2000년 천상병시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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