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 권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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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만
천년의 잠에서 깨어나자 완벽한 치료법이라며
클론에 영혼을 옮기겠단다 안정화까지 하루가 지나자
팔에 찍힌 행성여행 일주권으로 지구를 돌아보란다
내 앞으로 이체된 사이버머니를 확인해보니
신분 증명에 특별가석방이 떠 있다
특AA 클론으로 인간을 살아간다는 게 특별가석방인 모양이다
살갗을 쓰다듬어보니 은초롱꽃 한 송이 피어난다
늦은 오후 한 칸을 날아놓은 새 한 마리 날고 있다
인간이었던 종족은 휴양지로 몰려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노동은 휴머노이드가 서비스는 클론 담당이라고 알려준다
프로그램된 표정인지 왠지 척박하다
클론은 회색 옷을 인간은 하늘색 옷을 입는다
어디로 숨어버린 것인지 인간은 잘 보이지 않는다
구백 년이 흐른 뒤의 세상은 늘어난 수명만큼
행성 이주라는 험난한 도전을 만들어놓은 것 같다
주문한 대로 깨어나긴 했지만 비루한 영혼이 된 것을
실패작이라고 투덜거릴 때 진짜 인간을 만났다
하늘색 가운데로 그어진 회색 한 줄을 통해 인간과
클론의 합작품인 걸 연민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화성으로 이주한 신인류들은 강철보다 단단하다며
부활에 빌붙은 허약한 내 몸을 한참 보듬어준다
차가워진 피로 살기 싫어 지구에 남았다는 그
어디든 갈 수 있는 클론이라 특별가석방이라며
인간족이 모여 사는 티티카카에도 한번 가보라 한다
99번 게이트에서 페루행 행성버스에 올라타니
내 손을 잠시 스쳐 간 갈대바람이 세차게 흔들린다
―계간 《상상인》 2022년 여름호

경북 봉화 출생
2012년《시산맥》으로 등단
시집으로『발 달린 벌』 등
제4회 월명문학상, 제7회 최치원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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