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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읽는 밤 / 전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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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05회 작성일 22-10-16 21:45

본문

금강경 읽는 밤

 

  전윤호



내가 잠든 밤

골방에서 아내는 금강경을 쓴다

하루에 한 시간씩

말 안하고 생각 안하고

한 권을 온전히 다 베끼면

가족이 하는 일이 다 잘될 거라고

언제나 이유 없이 쫓기는 꿈을 꾸다가

놀라 깨면 머리맡 저쪽이 훤하다

컴퓨터를 켜놓고 잠든 아이와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속에서

경을 쓰는 손길에 눈발이 날리는 소리가 난다

잡념처럼 머나먼 자동차소리

책장을 넘길 때마다 풍경소리

나는 두렵다

아내는 나를 두고 세속을 벗어나려는가

죄 없는 두 아이만 안고

범종에 새겨진 천녀처럼

비천한 나를 떠나려는가

나는 기울어진 탑처럼 금이 가다가

걱정마저 놓치고 까무륵 잠든다

 

전윤호 시집, 나에겐 아내가 있다(세종서적, 2015)


전윤호.jpg


1964년 강원도 정선 출생

동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1991년 현대문학》 등단

7회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12회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8회 한국전문인대상 수상

시집으로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순수의 시대

연애소설』 『늦은 인사』 『천사들의 나라』 『봄날의 서재

세상의 모든 연애정선旌善』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 

나에겐 아내가 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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