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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그늘 찾기 / 이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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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39회 작성일 22-06-24 21:17

본문

한낮의 그늘 찾기

 

  이제니

 

 

  너는 천변의 끝에서 끝을 반복해서 오가고 있다. 한여름의 천변은 눈멀었던 날을 비추고 있다. 천변과 낙원. 천변과 낙원. 너는 천변을 걸을 때마다 낙원을 생각한다고 했다. 출렁이는 물결 속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섞이며 뒤덮이고 있다는 기시감 속에서. 너는 눈부신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픈 것을 가리고 있었다. 불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파편적으로 배열되고 있는 이미지 속에서. 물가로 나와 몸을 말리는 한 마리의 백조가 있고. 무성한 잡초가 있고. 버려진 조각들이 있고. 끝내 가닿지 못한 그늘이 있고. 결국 다루지 못한 이야기가 있고. 말할 수 없어서 말하지 못한 슬픔이 있다. 갈증과 증발. 갈증과 증발. 낱말은 발음하기에 좋은 낱말을 제 곁으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가리는 것을 더는 가리지 않게 될 때. 기다리는 것을 더는 기다리지 않게 될 때. 가리는 것은 기다리지 않은 것으로 문득 드러나게 될 것인가. 여기까지 썼을 때 너는 너를 위로해주러 오던 언젠가의 발소리를 듣는다. 조금씩 선명해지면서 네 곁으로 와 멈추어서는 소리 앞에서. 더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이 중요하지 않게 될 때. 더는 기다리는 것에 의지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 때. 그때. 너는 네가 기다려온 것의 중심으로 한 걸음 더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천변은 걸으면 걸을수록 한 번도 가닿지 못했던 낙원을 닮아가고 있었다. 너는 길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한 감각 속에서 다시금 눈을 감는다. 뒤늦게 찾아오는 명료한 사실 하나를 깨달으면서. 벽이라든가 막이라든가. 벼랑이라든가 불안이라든가. 피안이라든가 피난이라든가. 낱말과 낱말의 질감을 섬세히 구분하고 구별하던 사람을 떠올리면서. 늘그막의 그늘막. 늘그막의 그늘막. 더는 만날 수 없는 얼굴 하나가 사라져가는 우리를 옛날의 장소로 불러 모으고 있다. 언젠가의 우리는 한낮의 그늘 속에서 만난 적이 있었고. 오늘 다시 오래전 그늘 속에서 천천히 늙어가고 있었다. 한여름의 천변은 보고서도 보지 못한 것으로 가득하여서 우리는 우리가 놓여 있는 전경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났다. 우리에게 속하면서도 속하지 않은 풍경이 저세상처럼 아득하게 좋았다.

 

―《문장웹진 20226월호


 

 leejn.jpg


2008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아마도 아프리카』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편운문학상 우수상, 김현문학패, 현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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