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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듯이 / 이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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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90회 작성일 22-03-23 12:27

본문

시간이 멈춘 듯이

 

  이민하


 

달리던 기차에서 와르르 얼굴들이 쏟아지듯이

 

저녁 길에 터져 버린 과일 봉지에서

굴러가 버린 동그란 것들을 어디선가

불쑥 알아볼 수 있을까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손을 적신 단물이 빠질 때까지

 

새벽의 대합실에서

토요일의 거리에서

기다림이 꽉 찬 빈방에서

 

낡은 가방을 들고 벌을 받듯이

고자질을 한 입이 다물어지지 않듯이

 

끝난 겨울과 시작되는 겨울이 불을 끄고 마주 앉아서

일 년을 혀로 핥았는데 녹지 않는 케이크라면

그 위에 꽂혀 있는

 

플라스틱 꽃불들은 누구의 피켓일까

아니면 눈물일까

 

눈앞에 떠 있는 눈송이가 공중에 매달려 내려오지 않듯이

 

이민하 시집 미기후(문지, 2021)



 

전주 출생  
2000년 《현대시 》로 등단  
시집 『환상수족』『음악처럼 스캔들처럼』『모조 숲』『세상의 모든 비밀』
 미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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