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의 샘물 / 정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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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의 샘물
정유화
나를 미워하며 떠난 사람들 때문에
자주 갈증이 났다.
그래서 날마다 마음에 샘물을 팠다.
얕게 팠는지
해가 뜰 때에는 금방 말랐고
비가 올 때에는 모래와 함께 무너지기도 하였다.
피던 꽃들이 와서는 “피”하고 비웃고 가고
지나던 새들이 “짹”하고 비웃고 가고
안면 있는 얼굴들이 “쳇”하며 스쳐 가도
선한 생각으로 샘을 팠다.
쓴 물이 나서, 메웠다가 다시 팔 때에는
미워하며 샘을 팠다.
일생을 다하여도 파지 못할 것 같아
가슴을 텅텅 치며 하늘을 우러러볼 때
가슴속 어딘가에서도 텅텅 소리가 따라 나왔다.
궁금해서 몇 날을 굶어가며 파고 또 파 들어가다가
어둠 속 바닥에 깔려 있는 반석을 발견했다.
미움의 세월이 몰래 만들어낸 저 단단한 반석
깨뜨려야만 버릴 수 있는 저 무거운 바윗덩어리
나는 핏대를 세우며 망치로 반석을 쳤다.
“땅~” “땅~” “땅~” 하는 순간,
오! 깨진 틈에서 터져 나오는 이 물, 이 샘물
오! 미움이 깨질 때에 나오는 이 생명의 물
꽃과 새와 해와 달과 얼굴들
깨진 그릇처럼 떠난 이들을 날마다 불러 모으리라.
반석의 샘을 지닌 이 몸
―계간 《시산맥》 2022년 봄호

1962년 경북 선산 출생
1987년 《동서문학》 등단
시집 『떠도는 영혼의 집』
『청산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 『미소를 가꾸다』 등
2004년 중앙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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