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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 / 유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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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53회 작성일 22-02-28 12:58

본문

수묵水墨

 

  유종인

 

 

어떤 먹[]을 굳게 놔두다가

낙타처럼

옅게 혹은 짙게 끌어서

뚜벅뚜벅 물가에 데려갔지요

 

사납고 완고한 칠흑 속에서

담묵의 새벽이

잠결의 미소로써 나오더군요

가려졌던 경물이

모서리를 이끌고 번져 나와요

 

나의 무지(無知)에도 농담(濃淡)을 드리우죠

내가 나를 당신이 당신을

그리고 서로의 뺨을

오래된 처음처럼 더듬어 번지듯

물이 먼저 이끌다 짙은 눈썹 먹[]

어깨 겯듯 한 산천을 그려 거닐자 하죠

 

방금 나온 꽃들이 옛 생각의 뺨을 물들고 섰어요

날랜 새들이 되돌리고 싶은 총알처럼 허공에 박혀 있어요

먼 산과 팥알만 한 사람들, 허공에 번진 물소리

 

자유가 옹색해질 때도

자유의 물이 좋아요

 

칠흑에서 초록의 여름이 갈려 나오죠

내줄 수 있을 때까지 내주자고

가둘 수 없이 번져보자고

다솜은 언제나 연애의 먹을 갈아대지요 

 

계간 시산맥2022년 봄호




1968년 인천 출생
1996년《문예중앙》시부문 당선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시집『아껴 먹는 슬픔 』『교우록 』『사랑이라는 재촉들』『양철지붕을 사야 겠다』
시조집 『얼굴을 더듬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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