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된 기록 / 이제니 > 오늘의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오늘의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舊. 테마별 시모음  ☞ 舊. 좋은시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분실된 기록 / 이제니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874회 작성일 18-09-10 09:24

본문

분실된 기록

 

    이제니

 

 

  첫 문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픔을 드러낼 수 있는, 슬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고통의 고통 중의 잠든 눈꺼풀 속에서.

    

  꿈속에서 나는 한 권의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펼치자마자 접히는 책

  접힌 부분이 전체의 전체의 전체인 책

    

  너는 붉었던 시절이 있었다

  너는 검었던 시절이 있었다

  검었던 시절 다음엔 희고 불투명한 시절이

  희고 불투명한 시절 다음에는 거칠고 각진 시절이

    

  우리는 이미 지나왔던 길을 나란히 걸었고. 열린 눈꺼풀 틈으로 오래전 보았던 한 세계를 바라보았다.

    

  고양이와 나무와 하늘 속의 고양이

  나무와 하늘과 고양이 속의 하늘과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다. 잎들은 눈부시게 흔들리고 아무것도 아닌 채로 희미하게 매달려 있었다.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인가. 나는 지금 순간의 안쪽에 있는 것인가.

    

  아니요 당신은 지금 슬픔의 안쪽에 있어요.

  슬픔의 안에. 슬픔의 안의 안에.

  마치 거품처럼.

    

  우리는 미끄러졌고 이전보다 조금 유연해졌다.

    

  언젠가 내가 썼던 기억나지 않는 책

  언젠가 내가 읽었던 기적과도 같은 책

    

  지금은 그저 이 고통의 고통에 대해서만 생각하도록 하자. 우주의 밖으로 나갔다고 믿는 자들이

실은 우주 속을 헤매는 미아일 뿐이듯이. 우주의 밖은 여전히 우주일 뿐이니까. 슬픔 안의 슬픔이

슬픔 안의 슬픔일 뿐이듯이.

   

  쓴 것을 후회한다. 후회하는 것을 지운다.

  지운 것을 후회한다. 후회하는 것을 다시 쓴다.

    

  백지와 백치의 해후

  후회와 해후의 악무한

    

  텅 비어 있는 페이지의 첫 줄을 쓰다듬는다.

  슬픔에는 가장자리가 없고 우리에게는 할 말이 없었다.

    

  펼쳐서 읽어라

  펼쳐서 다시 써라

    

  분열된 두 개의 손으로 쓰인 책. 너는 어둠 속에서 다시 나타난다. 극적인 빛을 끌고 나타났다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밤은 길어진다. 손은 어두워진다. 너는 다시 한 발 더 어둠 속으로 나아간다.

    

  무수한 괄호들 속의 무수한 목소리들

  말과 침묵 사이에 스스로를 유폐한 사람들

    

  이름 없는 이름들을 다시 부르면서

  다시 돌아온 검은 시절을 바라보면서

    

 그것은 고통의 고통 중의 잠든 눈꺼풀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흙으로 다시 돌아 가듯이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는 듯이

 

 

이제니 시집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문학과지성사, 2014)에서

 

 

 

leejn.jpg

1972년 부산 출생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 』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3,197건 17 페이지
오늘의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239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85 0 10-23
239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84 0 05-18
239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84 0 12-26
239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83 0 01-09
239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82 0 11-23
239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81 0 06-10
239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80 0 06-23
239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9 0 06-07
238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9 0 01-23
238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9 0 04-19
238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7 0 06-10
238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7 0 11-15
238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6 2 10-04
238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5 0 02-10
열람중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5 0 09-10
238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4 0 03-06
238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3 2 10-23
238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2 0 11-20
237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2 0 01-18
237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0 1 08-17
237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9 0 05-24
237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8 0 07-21
237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8 1 09-29
237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8 0 12-29
237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7 0 02-02
237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6 0 03-03
237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6 0 03-28
237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6 0 01-03
236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3 0 05-20
236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3 0 08-22
236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3 0 01-11
236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3 0 05-04
236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1 0 12-05
236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9 0 02-15
236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8 0 09-19
236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8 0 04-25
236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7 0 04-20
236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6 0 08-01
235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6 0 09-03
235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3 0 11-15
235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2 0 05-24
235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2 0 01-22
235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1 0 04-12
235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0 0 12-01
235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49 0 09-19
235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49 0 04-03
235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48 0 08-02
235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48 0 12-05
234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47 0 05-12
234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47 0 06-13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