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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義烈)하고 아름다운 / 박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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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90회 작성일 21-11-24 15:33

본문

의열(義烈)하고 아름다운

 

   박정대

 

 

낡은 흑백사진 속의 얼굴처럼 흐린 하늘, 톱밥 난로 속에서 의열의열 소리를 내며 바알갛게 타오르는 불꽃들

 

터져 나오는 기침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는 가루약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한 잔의 차를 마신다 용의 뿔처럼 흩어져 간 동지들을 생각한다

 

자꾸만 기침이 난다 말을 한다는 건 여전히 아름다운 걸까

 

눈이 내릴 듯 달무리 가득한 밤 그는 깊은 잠에 들지 못한다

 

구름이 운반하는 음악들 어쩌면 아침이 오기 전에 눈발로 떨어질 것이다

 

마음은 늘 절벽 같아서 한 발만 내딛으면 지상에서 아름답게 사라질 것이다

 

사라진다는 건 여전히 아름다운 걸까

 

눈은 밤새 아와 비아非我의 투쟁처럼 내려서 무장무장 쌓이는데 허공을 가로지르며 지상으로 걸어오는 눈발들, 하얗게 진군하는 푸르디푸른 불꽃의 마음들

 

누군가 밤새 기침을 하더니 기침은 허공으로 다 흩어져 버렸나

 

허공으로 흩어진다는 것은 여전히 아름다운 걸까

 

생각을 좇아서 다다른 아침

 

이토록 광활한 고독과 침묵은 여전히 아름다운 걸까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눈은 여전히 아름다운 걸까

 

아침의 방문을 열면 봉창을 통과한 햇살이 환하게 펼쳐진 한 장의 들판을 몰고 다시 날아오른다

 

오 밤새도록 내리고 다시 날아오르는 의열하고 아름다운 이것은 무엇인가

 

 

계간 시인수첩2019년 여름호




pjd.jpg

 

1965년 강원도 정선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0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으로 『단편들 』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
『아무르 기타』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삶이라는 직업』『모든 가능성의 거리』
『체 게바라 만세』 등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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