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도 베틀 / 김준태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금오도 베틀
김준태
두모리 직포 해송림으로 밤 마중 가면
까막눈이 까매진다
손을 맞잡고
체온의 윤곽선을 느낀다
먹줄 놓은 수평선 멀리 밀어 두고
너울과 파랑은 큰 자라 등이 업고 간다
물색흔 어지러운 물그림자 빈집으로
물새들이 불어온다
어린(魚鱗)이 비치는
만선의 적요
모래 발자국은 물성을 기울인다
빈 배는 용골을 들어 항로를 고친다
격정을 밀고 온 등고선을 주머니에 넣고
격랑과 너울은 서랍에 두고
모래의 전생을 두드리는 소리
모래알 통각을 만져본다
은빛 파랑 볏밥 위로
달빛 베틀이 씨실 날실 엮는다
열도를 바투 죈 밧줄이
가파른 생활을 끌어올리고 있다
―제26회 여수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심사평]
한국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시의 향연
문태준(시인)
제26회 여수해양문학상 시 부문 응모에는 높은 수준의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만큼 수상작을 선정하는
데에 고심이 컸다.
시편들은 바다라는 공간을 삶의 공간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억척스러운 일생, 풍어(豊漁)와 만선(滿船)에
대한 기원, 생명 세계로서의 바다, 어물을 파는 어시장 풍경, 여수 지역만의 풍물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그야말로 해양문학이 앞으로 한국시에 있어서도 하나의 미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동안 여수해양문학상이 해를 거듭하면서 이룬 진전이요, 큰 성과임에 분명할 것이다.
수상작 선정을 두고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작품은「파도를 수선하는 섬」,「썰물」,「금오도 베틀」이었다.
이 세 작품은 어느 작품을 대상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시「파도를 수선하는 섬」은 시적인 것의 발견과 시적인 것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솜씨가 빼어났다.
'수선'의 의미는 단일하지 않았다. 조업을 위해 훼손된 그물을 능숙하게 고치는 행위를 지칭할 뿐만 아니라,
바다가 고유의 자생력으로써 생명이 활동하는 풋풋한 공간으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하면서 또 동시에 윤슬과
달빛이 아름답게 비치는 바다의 풍광을 잘 손질된 상태에 견주었다. 다만 일부의 시행에 있어 그 시구가
지시하는 바가 불분명한 경우가 있어서 아쉬웠다.
시「썰물」은 단아한 서정과 시적 화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있었다.
이 시의 발상은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것, 즉 내왕하는 것에 기초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섬과 육지, 현실과 꿈,
오늘의 지금과 다가올 미래, 어머니와 시적 화자 사이의 관계 등으로 확장되면서 탄력적으로 오갔다.
자생하는 문주란이 씨앗을 퍼트리는 시기가 썰물 때라는 사실의 명시는 비록 사소할지 몰라도 미적으로는
의미가 상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시에서 '출근/퇴근', 혹은 '좋은 때/아쉬운 때' 를 이항(二項)으로 상정한
대목은 이 시의 극적인 긴장을 감쇄하는 요인으로 여겨졌다.
숙고 끝에 시「금오도 베틀」을 제26회 여수해양문학상 시 부문 대상작으로 결정했다. 함께 보내온 다른
시편들에서도 수일한 작품 수준을 안정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시행은 짧았지만 시적 문장의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었고, 또 구체적인 생활에 뿌리를 내린 상상력의 견고한
근력(筋力)이 시적 풍경을 떠받치고 있음을 충분히 인지할 수도 있었다. 고도로 정제된 시어의 사용은 긴 여운을
만들어내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너울과 파랑은 큰 자라 등이 업고 간다', "어린(魚鱗)이 비치는 / 만선의 적요",
"모래의 전생을 두드리는 소리", "달빛 베틀이 씨실 날실 엮는다" 등은 바다와 해변의 개개의 대상을 동적으로
또 정적으로, 긴 시간의 안목으로 간파한 절창이었고, 매우 독창적인 표현이었다.
거듭해서 하게 되는 생각이지만, 해양을 테마로 한 시 창작은 마치 대양처럼 창창한 상상력의 영역을 지니고 있다.
여수해양문학상을 계기로 한국시가 더욱더 풍성해지리라고 믿는다.
수상자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