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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 미술관 / 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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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40회 작성일 21-08-02 23:08

본문

시립 미술관

 

  한정원

 


엘리베이터는 밖에 세워 둘 것

 

본관까지 걸어가는 동안

나는 1,800년대로 들어가야 하니까

나의 이집트를 지나

아몬드나무를 건너가며

뜨거운 빗방울을 맞아야 하니까


당신은 1,800년대에 태어나지 그랬어요


천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열 개의 암실

환한 지붕 아래서는 과거를 볼 수 없어

조도는 낮게 배치할 것

어둠이 뿜어내는 19세기의 별빛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깊이이니까


붉은 방석에 앉아

한 시간 동안 무릎 꿇고 울어야 했던 여름이

빛을 녹채錄彩할 수 있다면

나는 검은 기둥 뒤에 숨어 갈색 피부를 이식할 거야


전시실 가운데는 토마토 스프를 먹을 수 있는

하얀 테이블의 카페를 열어 놓을 것

오래된 접시에 입을 맞추고

호퍼가 남기고 간 이른 일요일 아침을

수직의 구도로 기다려 보는 일


미술관을 다섯 번 접었다 펼치며

한숨 자다 일어난 남자가


푸른 수염을 깎으며

이백 년 전의 얼굴로 말한다

미래는 미래처럼 보이지 않고

과거는 미래처럼 보인다고


건물 뒤 자동으로 폐쇄된 출입구 아래는

발목을 담글 수 있는 물의 책갈피를 끼워 넣을 것

미술관은 늙어 갈수록 목이 마르니까

물이 투영하고 있는 또 하나의 별관을 지어야 하니까

 

한정원 시집 석류가 터지는 소리를 기록했다(시작, 2021)

 

 

 

hanjungwon-150.jpg


1955년 서울 출생

수도여자사범대학교와 세종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졸업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의 눈빛이 궁금하다』 『낮잠 속의 롤러코스터

마마 아프리카 석류가 터지는 소리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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