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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끄러미 /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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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96회 작성일 21-08-03 19:44

본문

물끄러미

 

  정호승

 

 

당신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볼 때가 좋다

차가운 겨울 밤하늘에 비껴 뜬 보름달이 나를 바라보듯

풀을 뜯던 들녘의 소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듯

선암사 매화나무 가지에 앉은 새가

홍매화 꽃잎을 쪼다가 문득 나를 바라보듯

대문 앞에 세워둔 눈사람이 조금씩 녹으면서 나를 바라보듯

폭설이 내린 태백산 설해목 사이로 떠오른 낮달이 나를 바라보듯

아버지 영정 앞에 켜둔 촛불이 가물가물 밤새도록 나를 바라보듯

물끄러미 당신이 나를 바라볼 때가 좋다

눈길에 버려진 타다 만 연탄재처럼

태백선 추전역 앞마당에 쌓인 막장의 갱목처럼

추적추적 겨울비에 떨며 내가 버려져 있어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 속에는

이제 미움도 증오도 없다

누가 누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빛 속에는

사랑보다 연민이 있어서 좋다

 

정호승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창비, 2017)




common.jpg


1950년 대구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외 다수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산문집 위안』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이 될까

어른을 위한 동시집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동화집 바다로 날아간 까치』 『슬픈 에밀레종

산소처럼 소중한 정호승 동화집』 『물처럼 소중한 정호승 동화집

어른을 위한 동화집 항아리』 『연인』 『기차 이야기』 『비목어』 외 다수

19회 공초문학상23회 상화시인상

9회 한국가톨릭문학상11회 편운문학상

12회 정지용문학상3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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